2003년 12월9일, 2004년 1월1일
감사원의 '시계(視界)'는 2003년 12월9일과 2004년 1월1일, 과거 두 시점에 맞춰져 있다.
이 두 시점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난 4월10일 감사원이 국세청에 내린 재벌그룹들의 일감몰아주기 행태에 대해 과세권을 집행하라는 통보는 2003년 12월9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현 기획재정위원회)의 결정과 이를 토대로 2004년 1월1일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시행에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이다.
2003년 12월9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는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가 만들어 온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도입안을 만장일치로 가결시켰다.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는 당시 '열거주의'를 택하고 있던 상속증여세법으로는 신종 자본거래를 통한 부유층의 세금부담 없는 부의 무상이전 등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부터 도입 논의가 시작됐다.
실제로 당시 일부 재벌들이 자회사간 변칙적인 지분거래를 통한 세부담 없이 자산을 불리고 경영권 세습체계를 확립하는 등 '국민정서'에 반하는 행보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작동하던 상속증여세법 체계로는 이 같은 편법행위 차단은 불가능했다.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도입은 이 같은 재벌가의 반(反)국민정서적 행위를 가장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는 방어수단이었다.
사실 당시에도 재벌가들이 특수관계 법인간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회사를 키우고 부를 축적하는 정황은 짙었으나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개념적 정립이 미흡,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도입 논의에서는 주테마로 다루어지지 않았었다.
재벌가의 일감몰아주기 문제가 수면 위로 급부상,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가 도입된 이듬해인 지난 2005년이었다.
당시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과 장남 정의선 현 현대차 부회장이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 상장으로 수 천억원 규모의 평가차익을 챙긴 사실이 공개되면서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이들이 어마어마한 액수의 평가차익을 얻어낼 수 있었던 발판은, 또 다른 현대 계열사들이 글로비스에 일감을 몰아주면서 회사가 급성장했기 때문이었다. 정치권도 이 부분에 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는 등 논란이 상당했다.
비단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편법적인 증여행위는 현대가(家)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상당수 재벌그룹들도 유사한 형태로 부(富)를 세습해 온 사실이 전면에 부각되면서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됐다.
당시 국세청도 정치권 등의 문제제기에 적극 부응,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편법증여에 대한 세금(증여세) 부과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었다. 하지만 실제 과세권은 집행되지 않았고, 현대가(家)의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징벌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징금(631억원)' 철퇴를 가하는 것으로 종결됐다.
이후에도 재벌그룹의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논란은 계속됐지만 과세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를 근거로 과세가 가능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증여시기 확정, 증여재산가액(과세표준) 산정 등 일감몰아주기 과세를 위한 법령상 근거나 집행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1년 12월28일, 2013년 4월10일
이후 상당기간 동안 논란만 거듭해 온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증여세 과세근거가 확실하게 정립된 시점은 2011년 12월28일. 이른바 '일감몰아주기 과세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2013년 7월 시행을 목표로 도입된 일감몰아주기 과세제도의 주요내용은 특수관계법인간 적용되며, 일감을 몰아받는 수혜법인의 지분을 3% 이상 보유한 친족관계의 대주주가 수혜법인의 매출에서 일감몰아주기 비율이 30%를 초과한 경우, 세후 영업이익에 증여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이었다.
즉, 국세청이 일감몰아주기 행위에 대한 과세권을 집행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마련된 셈.
당초 정부가 일감몰아주기 과세제도 도입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과거분에 대한 소급적용 문제가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정치권과 정부는 소급적용을 배제하고 2012년 1월1일 사업연도부터 제도를 적용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감사원의 관점은 달랐다.
지난해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에 대해 '주식변동 및 자본거래 과세실태' 특별감사를 진행한 감사원은 국세청이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도입 시점인 2004년 이후 재벌가의 일감몰아주기에 대해 과세권 행사가 가능했지만, 이를 집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대차그룹 계열 현대글로비스 ▲SK그룹 계열 SK C&C ▲CJ ▲롯데쇼핑 ▲GS ▲동국제강 ▲신세계 ▲STX ▲대선주조 등 9개 재벌그룹에 대해 증여세 부과방안을 마련해 집행하도록 통보했다.
감사원의 관점은 일감몰아주기 과세제도의 소급적용 문제가 아닌, 2004년 도입된 상속증여세 포괄주의를 근거로 충분히 과세가 가능했고 과세당국이 이를 적법하게 집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결자해지(結者解之)'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