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형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제도는 지난 1999년 1월 기업들이 자금 조달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기업에 투자를 하려는 기관이나 큰 손들에게 별도로 신주를 인수할 권리를 부여해 투자 메리트를 높이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분리형 BW가 허용되자 주가조작 뿐만 아니라 신주인수권(워런트)으로 오너의 지분을 끌어올리거나 경영권 승계에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분리형 BW를 이용해 최대주주의 특수관계인이 지분을 늘려 경영권을 장악하게 되면 최대주주로부터 구태여 상속을 받지 않아도 된다. 즉 비싼 상속세를 내지 않고도 얼마든지 경영권을 물려받을 수 있다.
게다가 때를 잘맞춰 주가가 오른다면 시세차익까지 거둘수 있어 분리형 BW를 잘만 활용하면 1석2조(一石二鳥)의 효과를 노릴 수도 있다.
성신양회는 지난 28일 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20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교보증권을 대상으로 무기명식 이권부 무보증 국내 사모 분리형으로 발행키로 했다고 공시했다.
청약일과 납입일은 모두 8월 30일인데 이날 동시에 BW의 권면총액 150억원 상당에 해당하는 워런트는 이 회사 김영준 회장의 장남인 김태현 수석부사장(39세)과 허필례씨에게 총 7억5천만원에 매각됐다. 김 수석부사장과 허 씨가 행사할 수 있는 신주인수권주 물량은 287만9천여주에 달한다.
성신양회의 최대주주는 6월말 현재 13.61%를 갖고 있는 김영준 회장이며 2대 주주인 김 수석부사장은 12.41%의 지분을 갖고 있다. 주식수로는 24만6888주 차이가 난다.
회사측은 김 수석부사장과 허필례씨가 워런트를 행사하면 공동으로 287만9천여주를 갖게 된다고 했을 뿐 김 수석부사장이 갖게 되는 정확한 몫은 밝히지 않았다. 워런트는 내년 8월 30일부터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김 수석부사장이 최대주주로 등극하는 것은 시간문제라 할 수 있다.
김 수석부사장은 장내에서 주식을 살 때 가격상승이라는 위험을 피할 수 있고 세금도 거의 없기 때문에 가장 저렴하게 경영권을 승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삼원테크는 지난 6월 20일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현대스위스4저축은행을 대상으로 50억원 규모의 BW를 발행했다. 그러나 7월 2일 정정공시를 통해 자금조달의 목적을 ‘기타자금’으로 변경하고 발행금액 총 50억원 중 25억원에 해당하는 BW의 워런트는 최대주주인 이택우 대표의 아들 이상경씨에게 매각한다고 밝혔다.
이택우 대표는 지난 6월말 현재 삼원테크의 지분 23.91%를 갖고 있고 아들 이상경씨는 0.63%의 지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경씨는 내년 6월 21일부터 워런트를 행사할 수 있고 103만여주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어 지분을 6% 이상 끌어올릴 수 있다.
코아스는 지난 5월 7일 신한캐피탈을 대상으로 30억원 규모의 BW를 발행한 뒤 권면총액 15억원에 달하는 워런트를 노재근 대표와 부인 최수자, 딸 노현정, 아들 노형우씨 등의 명의로 되사들였다.
코아스는 내년 5월 8일부터 이번 분리형 BW를 1주당 1083원에 주권발행할 수 있는데 8월 29일의 종가는 1700원으로 행사가에 비해 무려 56.9%나 올라 있는 상태다. 최대주주와 가족들의 지분을 늘리면서도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는 꿩먹고 알먹는 분리형 BW를 발행한 셈이다.
분리형 BW가 당초 기업의 원활한 자금조달이라는 기능을 벗어나 상속세를 회피하며 경영권을 승계하는 편법으로 활용되자 정부는 뒤늦게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29일부터 분리형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정부가 제 때 적절한 대책을 내놓지 못해 수십여개의 기업들이 분리형 BW의 발행 금지를 앞두고 분리형 BW를 대거 발행해 그 피해를 선의의 투자자들이 또다시 감당해야하는 처지에 놓였다.
한 M&A 전문가는 "기업들이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 6년 안팎의 장기 분리형 BW를 발행한 후 워런트를 되 사는 방법으로 지분을 늘리는 편법을 사용하곤 한다"면서 "시세조종을 통해 신주인수권 가격도 변경할 수 있어 분리형 BW는 가장 저렴한 합법화된 조세탈피 수단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