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카드 전산시스템 변경 문제로 이사회 내부 갈등
이건호 은행장, 중요 사안 보고…금감원 감사로 불똥
지난해부터 국민주택채권 위조, 됴쿄지점 부당대출, 개인정보 유출 등 잇따른 악재로 어려움을 겪었던 KB금융과 국민은행이 이번에는 내부 집안싸움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은 내부 전산시스템 변경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어 급기야 금융감독원이 감사에 나서는 등 걷잡을 수 없는 내홍에 휩쌓이고 있다.
이번 사건의 단초는 국민은행의 주 전산시스템을 둘러싼 교체 논란이다.
기존 안전성과 보안성이 우수한 IBM 메인프레임 시스템을 써 왔으나 특유의 폐쇄성으로 인해 시스템 개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IBM을 사용할 경우 타 사와 호환성이 떨어져 유지보수 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은데 이번에 교체 대상이 되었던 유닉스 시스템으로 전환할 경우 IBM은 물론 HP와 오라클 등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것.
이를 위해 국민은행·카드사에서는 2012년 8월부터 관련 TFT를 운영해 유닉스 운영 시스템 등을 포함한 여러 시스템의 장단점을 파악했다.
이어 작년 11월 은행 경영협의회를 거쳐 올해 4월 24일 은행·카드 이사회에서 유닉스시스템으로의 전환을 결의했다.
하지만 이건호 은행장과 정병기 상임감사가 시스템 결정과정이 깨끗하지 못하다며 이사회 의결에 반대하며 문제가 증폭됐다.
표면적으로 보면 은행장과 상임감사가 반대하는 시스템 교체를 물리적으로 이사회에서 통과시키려는 꼴이 됐기 때문. 이사회는 사외이사 6명을 포함해 은행장, 감사, 지주, 은행 부행장 등 총 10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어 이 은행장과 정 감사는 시스템 변경 관련 감사에서 문제가 발견돼 금감원에 중요 사안으로 보고를 했고, 금감원에서 면밀한 조사를 위해 은행 감사를 나오는 보기 힘든 풍경이 연출됐다.
이와 관련 KB금융지주 측에서도 다소 감정적인 해명을 내놔 눈길을 끌었다.
김재열 KB금융 최고정부관리책임자(CIO·전무)는 해명자료에서 이건호 은행장의 사적 메일이 이번 사건의 시발이라고 꼬집었다. 시스템 변경 과정에서 우선 협상에서 탈락했던 IBM코리아 대표의 사적 이메일을 받은 은행 경영진이 공식 절차없이 메일 내용을 근거로 재검토를 지시한 것이 이번 해프닝의 시발이라는 것이다.
또 그는 "상임감사위원은 은행 경영협의회와 이사회에서 결의된 사항에 대해 자의적인 감사권을 남용해 최고 의결기구인 이사회를 무력화시키려 했다"며 다소 감정섞인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이 은행장과 정 감사는 구체적으로 문제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꺼리면서도 이번 이사회 결의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 은행장은 20일 21세기 금융비전포럼에 참석한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금감원에 특별검사를 요청한 것은 깨끗하게 의혹을 풀고 넘어가기 위해서다. 은행장 입장에서는 의혹이 없이 하는 것이 좋지 않나"라며 우회적인 일침을 가했다.
이번 사건은 일회성 해프닝으로 볼 수 있지만 사실상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의 우호세력인 이사회에 대한 이 은행장의 반기로도 해석할 수 있다.
KB금융이 해명자료에서 '감사권을 통한 이사회 무력화'를 운운한 것은 이 은행장의 돌출행동에 대한 임 회장의 불편한 심기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