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세무사회는 전국을 아우르는 본회를 필두로 서울, 중부, 대전, 광주, 대구, 부산 등 6개 지방회, 각 지역을 나눠 100여개의 지역회를 두고 있다. 이 구조는 본청과 6개의 지방국세청 및 117개 일선 세무서를 거느리고 있는 국세청의 조직과 비슷하다.
세무사회와 국세청 조직구조는 유사하지만 중요한 차이를 두고 있는데, 바로 '선거'에 의해 각 지방세무사회장을 선출한다는 점이다.
즉 본회는 물론 지방회 집행부 핵심들은 회원들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이, 회원들의 손에 의해 세워지는 형태이기 때문에 회원 위에 군림하는 집행부가 아닌, 회원들의 '심부름꾼'으로 집행부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구정 회장의 집권 3기(3선), 비정상적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정 회장은 여러 행사장을 돌며 본회와 지방회의 관계가 '하향식(top-down)'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 회장은 자신과 뜻이 일치하는 측근인사를 지방회 임원에 앉히기 위해 선거와 관련된 규정을 입맛대로 개정해 지원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지방회 운영규정을 바꿔 지방회의 행동반경을 본회 통제 아래 두려 한다는 우려를 사고 있기도 하다.
또한 제29대 세무사회장선거를 한달여 앞둔 최근 선거 규정을 두 차례에 걸쳐 개정하고 특정 후보에 대한 인터뷰를 세무사 회보에 대대적으로 게재하는 등 '선거개입' 논란을 촉발시키고 있다.
서울세무사회장 선거 앞두고 '내 편들기' 회칙개정
지난해 5월 치러진 서울지방세무사회장 선거는 정구정 회장의 측근인 임채룡 세무사회 부회장과 한 때 정 회장의 친구였으나 3선 출마를 반대했던 김상철 세무사의 양자 대결로 치러졌다.
이 때도 정구정 회장은 자기 사람을 당선시키기 위해 '저렇게 해도 되는 것인가'라고 할 정도로 규정을 바꿔가며 서울회장 선거에 개입했다.
서울회 선관위에서 후보들의 소견문 등을 한참 검토중인 상황인데 갑자기 3일 후 선거 공보물을 보내라고 규정을 개정한 것이다. 양측의 공보물 내용을 조율 중이었던 서울회 선관위는 시간에 쫓겨 결국 공보물 발송에 실패했다.
이에 임 후보는 '서울회 선관위는 선거관리규정을 준수하라'는 피켓을 들고 세무사회관 앞에 10여명의 회원들을 대동해 항의시위를 벌였다.
임 후보의 피켓시위 다음날 세무사회는 바로 상임이사회를 열어 지방회 선관위가 미흡할 경우 본회 선관위로 대체할 수 있게 한다는 '임원등선거관리규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게임이 한창 진행 중인데 갑자기 본회가 개입해 '룰'을 바꿔버리는 사태가 연달아 빚어진 것이다.
서울세무사회장 선거판은 의견대립으로 인해 고성과 멱살잡이가 오고가는 난장판이 벌어지는 진흙탕 선거가 되어버렸다.
당시 본회의 선거개입 의혹을 제기한 세무사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거공보물 발송 관련 규정을 개정한 것은 정 회장이 지지하는 후보(임채룡 전 세무사회 부회장)측이 작성한 소견문 등에 상대후보를 비방한 내용이 담겼고 이 부분이 명예훼손 등 이유로 배포가 불가능해지자 홍보물 수정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꼼수'를 쓴 것이다."
'선거규정 내 마음대로 고치기' 계속
선거를 앞두고 상황에 따라 선거규정을 개정하는 정구정 회장 이하 집행부의 행태는 올해도 반복되고 있다. 여론 수렴이나 이런 과정은 다 생략된 채 상임이사회 논의만 거친 후 일사천리로 규정이 확확 바뀌고 있다.
오는 6월 제29대 세무사회장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3월17일, 5월11일 2차례에 걸쳐 선거 규정이 개정됐다.
급조된 임원선거관리규정 제7조의2 3항에 따르면 본회와 지방세무사회 임원은 그 직에 대한 사임서를 후보자등록 개시일 7일 전까지 제출해야 한다. 단 후보자등록개시일로부터 40일 이내 임기가 종료(만료)되는 본회와 지방회 임원은 제외하도록 한다고 되어있다.
본회 임원은 사퇴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서울회 임원은 사퇴할 수 밖에 없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 회장의 측근인 본회 임원을 지원하고 자신과 뜻이 맞지 않는 인물이 어떤 형태로든 출마하는 것을 제한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다.
또한 동 조항 4항에 따르면 임원선거에 입후보하고자 하는 자는 선관위가 고시한 날 7일 이내에 그 단체장을 사임해야 한다.
선관위가 지난 13일 세무사회 홈페이지에 게시한 비법정 단체는 ▲한국세무사고시회 ▲한국세무사석박사회 ▲세무대학세무사회 ▲한국세무법인협회 ▲AOTCA 한국친선연맹 ▲한일세무사친선협회 ▲서울지역세무사회장연합회 ▲인천부천김포지역 세무사연합회 ▲수원권역세무대리인협회 ▲안세연합회 ▲세무사미래포럼 ▲세무사회바로세우기연합회다.
4항에 따르면 정 회장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몇몇 임의단체장들이 사퇴를 하지 않는 이상 회장 또는 감사, 윤리위원장, 러닝메이트 부회장 출마가 사실상 원천봉쇄된 것이다.
정 회장이 평소 세무사고시회 등이 임의단체라며 예산지원도 하지 않다가 이번 선거 때는 마치 법정단체인 양 취급, 이들 단체 회장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제9조의2 5항의 라목에 따르면 '위원회의 승인을 받지 않고 선거공보, 소견문, 홍보물 등을 회원이나 회원이 아닌 자에게 배포한 경우' 후보자격을 박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외에도 카카오톡, 페이스북을 통한 선거운동 제한, 의견수렴행위, 개인소견발표회, 공청회, 토론회를 제한함에 따라 모든 선거운동을 가로막는 '저인망식 규제'를 설정, "후보자들의 손발을 묶어놓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 회장이 지난 4월1일자 세무사회보에서 모 출마 후보자의 인터뷰 내용을 3면에 걸쳐 대서특필해 지원하면서 타 출마예상자에 대해서는 선뜻 이해가 힘든 규제로 선거활동을 아예 하지 못하게 족쇄를 채운 것은 명백한 선거개입이며 불공정 선거를 조장하는 행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방회장도 선출직인데…지방회 옭아매는 본회 규정
비단 선거 규정 개정만이 문제는 아니다.
지방회와 지역회를 본회의 영향력 하에 묶어두기 위해 관련 규정을 모두 뜯어고쳐 놓았다. 똑같이 선거를 통해 선출된 지방회장들이 본회장에 예속되어 지방회 주요 사업과 관련해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웃지 못할 환경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실제로 정구정 회장 당시 개정된 '지방세무사회등설치운영규정(이하 지방회규정)'이 본회가 지방회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당초 지방회규정은 2010년 12월14일 조용근 전 회장 재직 당시 개정됐었는데, 당시 규정(제3조)에 따르면 지방회는 여타 교육 등의 사업을 지방회 자율에 따라 결정하고 본회에 보고하기만 하면 됐었다. 단체협약의 경우에만 본회의 승인을 받아야했다.
하지만 지난 2014년 12월10일 새롭게 개정된 규정에 따르면 지방회는 단체협약 및 회원특별교육, 직원교육을 본회의 사전승인을 받아야만 실시할 수 있게 됐다.
지역회에 대해서도 기존 2010년 12월14일자 규정에는 별도의 규제가 없었으나 2014년 12월10일 개정된 규정에 따르면 회원 및 직원교육을 지방세무사회를 경유해 본회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방회와 지역회가 실시해 온 가장 주요한 일들이 본회의 통제 하에 묶이게 된 것이다. 특히 지역회의 경우에는 예산지원도 전무한 상태에서 통제만 받는 기형적인 구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지방회, 지역회 관계자들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자체교육 승인을 거부하는 본회에 대한 불만이 높다.
한 관계자는 "예산지원도 받지 않는 지역회 교육에서 세무사회 교육교재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육승인을 받지 못했다"며 "지역 내 교수 등이 돈을 받지않고 회원들에게 봉사하겠다는 것도 막으니 납득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지방회 교육을 할 때 주관은 본회가 하지만 모든 준비는 지방회가 하고 있다"며 "하지만 지방회장 및 임원들은 사회 등 교육진행을 할 수가 없어 지방회원들 앞에서 입도 뻥끗하기 힘든 실정이고 정구정 회장의 일방적인 말만 전달되고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