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한 맺힌 영가 많아 보호령이 동행
한 TV 개그프로에 저승사자가 등장한다. 검은 한복에 검은 갓을 쓰고 무표정한 얼굴의 저승사자를 보고 온갖 개인기로 따라가지 않으려는 노인. 어둡기만 한 저승사자를 웃음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죽음에 대한 문화적 정의만큼이나 죽음의 광경에 대한 묘사도 참으로 다양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망자를 염라대왕 앞으로 인도하는 것은 저승사자라고 했다. 혹자는 저승사자가 아닌 수호령이 영가들을 맞이한다고 한다. 또한 18세기를 풍미한 서양의 영능력자인 스웨덴보르그는 인간이 죽을 때는 천사가 와서 영혼을 데려간다고.
일전에 법조계에 있었던 분의 병문안을 간 적이 있다. 공부를 많이 한 분이라 위중한 상황에서도 죽음에 대해 초연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내게 죽고 싶지 않다고 매달렸다. 삶에 대한 회한이 남아서 그런가했지만 그는 "까만 옷을 입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어요. 저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하며 몸부림 쳤다.
알고 보니 검은 옷의 사자는 생전에 그의 구형으로 사형을 당한 자였다. 죽은 사형수는 원한이 맺혀 그의 죽음을 영계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죽음이 임박한 그가 사색이 되어 제 발로는 영계로 가지 않으려 버텼던 것.
살아생전 인생 빚을 진 사람의 죽음이 임박하면 그 앞에 빚쟁이 영가들이 기다린다. 육신을 갖고 있을 때는 감히 범접하지 못하던 영가들도 빚을 진 사람이 같은 처지의 영가가 되면 달려드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흔히 저승사자라고 불리는 영계의 파수꾼들이 한 맺힌 영가들이 갓 망자가 된 이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오히려 보디가드처럼 보호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세태가 각박해질수록 경제사범이 늘어나는 것처럼 최근 영계로 가는 길목에도 그런 인생의 채무를 해결하려는 일들로 종종 시끄럽다. 생전에 좋은 일을 많이 했던 사람은 영계에서 모시러 오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죽은 후 주변 영가들의 모습만 보아도 망자가 생전에 덕을 쌓으며 살았는지 아닌지를 쉽게 알 수 있다.
현대에 들어서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논의하는 것조차 신비적인 영역으로 치부되고 있는 형편이다.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죽음에 대해서만큼은 과거보다도 못한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죽음을 마중 나오는 자들의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죽음이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이다. 마치 애벌레가 변해 아름다운 나비가 되듯이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이 바로 죽음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은 잘 죽기 위해 태어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