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염라대왕 앞 벌 받는 장례문화 아쉬워
우리는 전통적으로 장례를 치를 때 망자를 일컬어‘학생’이라 했다. 몇 년 전 호평을 받았던 영화 ‘학생부군신위’도 지방에 쓰는 ‘현고학생부군신위’에서 따온 것이다. 생전에 벼슬을 했다면 관직을 쓰지만 대체로 학생이라고 쓰는 이유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삶 속에서 평생을 배우며 살다 가는 학생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몸과 마음을 낮추며 죽음을 맞이하는 전통 장례 문화의 특성은 다른 곳에도 나타난다. 장례할 때 망자를 두루 매듭짓는 것은 살면서 죄를 지은 죄인이라는 의미가 있다. 회초리를 들고 같이 매장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저승길에 갈 때 배고프지 말라고 물을 준비하고 밥을 먹이면서 ‘백 석이오, 천 석이오’라고 한다. 그리고 입관 시에는 망자의 얼굴을 보이지 않는 관습이 있다.
현대에 와서도 이런 풍습은 지속되고 있지만 조금씩 장례 문화에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옛날에는 만장을 써주던 풍습도 꽃을 전달하는 것으로 서서히 바뀌었다. 마지막 가는 길이 더욱 생명력 충만하게 아름다워진 것이다. 우리의 삶이 한 송이 고운 꽃이었다면 죽음은 만개한 꽃이 선물하는 아름다운 열매가 아닐까.
사실 구명시식을 하다보면 섬뜩하게 놀라는 일이 있다. 최초의 모습이 최후의 모습이라는 말처럼, 입관 당시의 형상으로 단단히 묶여 나타난 망자들의 모습은 너무나 속박되어 보일 때가 많아 안쓰럽기까지 하다. 게다가 부은 얼굴의 영가 또한 마음 편히 안식을 취하기 힘든 모습이니 누구를 위한 풍습인지 답답할 뿐이다. 사람의 몸을 받아 사는 동안 여러 가지 속박에 묶여 살았건만 마지막 가는 길까지 어딘가에 매여 힘들게 갈 필요가 있나 하는 아쉬움도 든다.
서양에서는 시신을 곱게 화장(化粧)해서 작별의 인사를 할 때 생전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인다. 화장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도 화장을 하기 전 아름답게 꽃으로 장식한 시신을 미리 보여주는 과정이 있다. 죽음이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이듯 장례 문화도 사는 모습과 닮아가야 하지 않을까.
사는 동안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대하던 모습 그대로 마지막 가는 길에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정겨운 인사를 나눌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사는 동안 많은 실수와 잘못을 했기에 삶의 끝 무렵에 돌이켜보면 물론 죄인이며 영원한 수행자인 우리이다. 그러나 그러한 겸손이 과해 염라대왕 앞에 닿기도 전에 미리 벌 받는 모습으로 준비해 가는 것은 지나치지 않나 싶다.
문화에는 항상 그런 모습을 갖춘 배경이 있기 마련이다. 옛날에는 집에 조등(弔燈)을 걸고 모든 장례를 치렀다. 그러나 이제는 장례식장에서 위생적이고 신속한 절차로 모든 것이 이뤄진다. 삶을 둘러싼 배경이 바뀌면 죽음을 둘러싼 문화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삶이 아름답다면 죽음 역시 아름다워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