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구명시식의 불청객 영혼들
내가 주관하는 구명시식에서 대화를 나누는 영혼들은 동참자들의 눈에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나의 귀와 눈으로만 듣고 보는 것이다. 그것은 영혼의 진동수와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진동수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마치 프로펠러나 선풍기가 돌면 그 속도가 너무 빨라 회전체를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나는 영혼의 갈망을 알아내어 가족들에게 그 뜻을 전달해 준다. 간혹 동참자들이나 구명시식을 신청한 가족 중에 영력이 강해 나와 영혼과의 대화를 어렴풋이 듣고 보는 이도 있고, 가끔 영혼이 건드리는 숟가락 소리나 동전이 달그락거리는 소리처럼 작은 소리를 듣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극히 드문 예에 속한다. 그러나 영혼의 소리를 모두가 듣는 경우도 간혹 발생한다.
90년대 친구 K의 조카를 위한 구명시식을 했다. 그는 조카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쉬움으로 나에게 부탁을 한 것이다. 젊은 나이로 비명에 간 조카의 죽음을 애도하는 구명시식은 K와 조카의 부모, 그 밖의 여러 가족이 참석한 가운데 행해졌다. 아담한 선원 바닥에는 돗자리가 깔려 있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여 신도들이 좋아했다.
나는 구명시식을 시작하고 열심히 독경을 했다. 갑자기 돗자리를 쥐어뜯는 소리가 들려 왔다. 순간, 선원은 공포의 분위기로 가득 찼다. 이처럼 선원의 돗자리 전체에서 쥐어뜯는 소리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아늑하고 정겨운 선원이 공포의 도가니로 변해버리는 것은 당연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알고 보니, 그것은 여러 영혼들의 절실한 몸부림이었다. K에게는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얼마 전 격포 앞바다에서 익사하고 말았다. 군인이었던 친구는 30명이 넘는 부하들과 낚시하러 갔다가 앞바다에서 모두 몰살을 당했던 것이다. 바닥을 울리는 아우성은 바로 그들이 물에서 나오려는 몸부림이 그대로 재현된 것이었다.
영혼들은 죽을 당시의 모습만을 기억하고, 또 그 모습으로 나타난다. 조카의 구명시식에 친구의 영혼이 나타나자 K는 매우 놀랐다. 그는 친한 친구의 죽음의 실체를 알게 되었고, 그의 죽음에 대해 무관심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그는 얼굴도 모르는 30여 명의 영혼들에게 일일이 술잔을 부어 주고 머리 숙여 절을 했다. 아울러 조카의 영혼도 잘 인도해 줄 것을 나에게 부탁했다. 조카가 편안한 모습으로 삼촌에게 감사하며 떠나갔음은 물론이다.
이 일처럼 구명시식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했던 일이 자주 벌어지곤 한다. 그때 나타나는 영혼들은 억울하거나 세인들의 기억 속에 사라져 간 자신의 죽음이 시시때때로 알려지기를 원한다. 이름 모르게 죽어간 영혼이 그동안 얼마나 한이 맺혔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