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101년 만에 돌아온 영친왕 유품
숙명여자대학교는 영친왕의 생모인 엄비가 여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1906년 용동궁에 학교터를 정해 설립한 대학이다. 생전에 엄비는 나라를 일본에게 뺏긴 원인 중 하나는 여성이 깨치지 못한 탓이라 여겼다.
2008년 12월, 나는 5년 전부터 소장해온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 이은의 유품 7점을 숙명여자대학교에 기증했다. 기증식 내내 감회가 깊었다. 마침내 영친왕 유품이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 때문이었다. 물론 그 유품이 내게 오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1999년 가을. 일본의 기시겐지라는 남자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문의 17대손 여성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2년 동안 나에 대해 조사했다면서 마사코 일본 왕세자비가 아이를 가질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순전히 도쿠가와 가문의 부탁이며, 황실과 무관하다’고 재차 강조했지만 나는 그의 의중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 역시 조건을 전달했다. “마사코비가 임신에 성공하면 나가노현에 있는 금강사에 위령탑을 세워 주십시오. 금강사는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의 마쓰시로 대본영 건설 현장에서 희생당한 한국인들의 넋을 위로하는 사찰입니다.” 마사코 왕세자비가 회임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저지른 학살의 업보이기 때문이었다.
기시겐지는 내 조건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구명시식을 청했다. 나는 그가 약속을 지키리라고 믿고 서울에서 초혼위령제를 집전했고, 그로부터 2개월 후 마사코 왕세자비의 회임소식이 보도됐다. 하지만 기시겐지는, 정확히 말하면 일본 왕실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만약 약속을 지키게 되면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일본 왕실은 그 업보를 받았고, 결국 마사코 왕세자비는 태아에 영양이 공급되지 않는 매우 희귀한 케이스로 유산을 했다.
2000년, 이번에는 일본 천태종 와다 대승정이 나를 초청했다. 이번에는 조건이 달랐다. “아무래도 위령탑은 힘듭니다. 대신 위령제를 올려드리겠습니다.” 나는 마쓰시로의 한국인 징용 희생자 영혼들은 위령탑을 원했지만 위령제도 좋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일본 왕실의 사과였던 것이다. 나는 대승정의 조건을 수락해 구명시식을 올렸고, 이듬해 마사코 왕세자비는 딸 도시노미야를 낳았다.
그 일에 대한 보답으로 와다 대승정은 궁내성 관리의 만남을 주선했다. 그는 궁내성에 보관하고 있던 유품 중 영친왕의 사진앨범과 의복, 명함(통행증)을 감사의 표시로 나에게 주었다. 고마운 일이었지만 나는 잠시 이 유품을 맡아두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연을 가진 영친왕 유품은 영친왕이 101년 만에 모친의 품에 안기듯 숙명여대 박물관에 기증을 되었고 지금은 많은 이들이 전시된 유품을 관람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