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천마총 주인이 밝혀지다(1)
경주는 신라 천년의 고도로 도시 자체가 바로 문화재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곳곳에 유물이 없는 곳이 없다. 얼마 전 지인들과 밀양을 거쳐 경주에 간 적이 있다. 경주 고분유적지를 보면서 저 무덤의 주인은 누구인가 생각하다가 문득 예전에 만난 한 노부인이 생각났다.
90년대 어느 노부인이 나에게 구명시식을 청한 적이 있다. 그 당시 노부인의 나이는 65세. 경제적으로 넉넉할 뿐만 아니라 가정적으로도 성공한 남편과 자식들을 둔 안주인이었다. 그 누구도 그분을 불행하다고 여기지 않을 만큼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고백하는 게 아닌가.
노부인은 경남 양산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부잣집 맏딸로 태어났다. 그녀가 자란 99칸짜리 기와집에는 늘 사람들로 붐볐다. 맏딸인 그녀는 풍족한 환경 속에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에게도 혼기가 다가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에 누군가가 선을 보러 왔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키는 작았지만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신식 청년이었다. 그런데 청년이 선을 보고자 하는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고모라는 게 아닌가. 꿈속이었지만 서운함을 느끼기까지 했다. 그녀는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청년이 서 있는 배경에는 왕릉과 같은 큰 고분과 연못이 펼쳐져 있었다.
이상한 꿈을 꾼 그날 아침, 아저씨뻘 되는 먼 친척이 찾아왔다. 경주에 산다는 신랑감을 중매하기 위해 온 것이다. 경주라는 말에 그녀는 문득 지난밤 꿈이 생각났다. 그러고 나서 며칠이 지난 아침, 할아버지가 그녀를 찾았다. 영문도 모른 채 불려 간 그녀에게 할아버지가 느닷없이 말했다.
“너, 오늘 개울에 나가 빨래를 하거라. 그런데 반드시 너 혼자만 가야한다. 그리고 북청색 유똥 치마에 양단 저고리를 입고 가거라.”
날씨는 몹시 추웠지만 할아버지의 말을 거역할 수 없어서 개울가에 나가 빨래를 했다. 그러자 인기척이 느껴졌고, 그녀가 멀찌감치 서 있는 남자를 곁눈으로 훔쳐보는 순간 그녀는 전율을 느꼈다. 꿈속에서 본 그 사람이 거기에 서 있는 게 아닌가!
며칠 후 할아버지가 다시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속마음으로 신식청년과의 혼사를 매듭짓기 위해 부른 줄로 생각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엉뚱하게도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라고 했다. 늘 고분고분하던 그녀였지만 결혼만은 마음에 드는 그 사람과 하고 싶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그와의 결혼을 계속 고집하면 한 푼도 주지 않겠노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