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자살한 히데, 재결성 간절히 원해
2005년 7월,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대규모 음악축제인 ‘아사히야마 음악제’에 후암가족들과 함께 참석했을 때 일이다. 일본의 록밴드 ‘엑스재팬’의 멤버였던 토시가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삿포로까지 그 먼 길을 한걸음에 달려왔다.
토시는 오래 전부터 나를 잘 알고 있었다. 1997년 엑스재팬이 해체되면서 멤버들은 뿔뿔이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났다. 토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엑스재팬이 이룬 불멸의 록 음악을 뒤로하고 자신만의 음악색이 짙은 곡들을 작업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98년 히데가 자살했다. 토시는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토시는 히데의 영혼을 위로할 길을 찾았다. 엑스재팬의 왕관을 벗고 그는 소탈한 싱어송 라이터의 모습으로 돌아와 자신이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다녔고 무료 공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가슴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일본어로 번역된 내 책을 읽게 된 것이다.
나는 토시의 청으로 히데를 위한 구명시식을 올렸다. 구명시식은 마치 엑스재팬의 공연과도 같았다. 토시는 히데를 위해 생전 같이 불렀던 엑스재팬의 명곡을 불렀다. 영가로 나타난 히데도 노래를 따라 불렀다.
“자살은 실수였습니다.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히데 영가는 자신의 죽음을 후회했다. 엑스재팬이 해체된 뒤 그는 극도의 매너리즘에 빠지고 말았다. 더 이상 음악적으로 이루고 싶은 것도 없었다. 하고 싶은 음악을 모두 이뤘다고 생각했다. 엑스재팬의 옷을 벗으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았는데 막상 그룹이 사라지니 자신의 존재도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는 엑스재팬의 재결성을 간절히 원했다. 죽은 뒤에야 깨달았다는 히데. “제가 원하는 음악은 엑스재팬이어야만 가능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이뤘다고 생각한 것은 저의 오만이었습니다.” 죽어서도 엑스재팬의 영원한 멤버로 남겠다고 약속한 그는 마침내 엑스재팬 재결성 공연을 통해 부활했다.
2008년 3월 28일, 엑스재팬은 해체 11년 만에 도쿄돔에서 재결성콘서트를 가졌다. 제작비 250억 원, 스텝만 6000여 명, 사흘 동안 15만 명을 동원한 초대형 콘서트였다. “드디어 제 꿈이 이뤄졌습니다.” 엑스재팬의 멤버였던, 그리고 조용히 세상을 떠난 히데 영가는 눈물을 흘렸다.
재결성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원통형 스크린과 홀로그램으로 돌아온 생전의 히데였다. 나는 히데가 스크린에 투영됐음을 직감했다. 영혼으로 돌아온 히데, 그는 생전에 뛰어넘고 싶어 한 음악적 경지보다 더 높은 천상의 음악을 들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