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실제 범죄사건 영화의 우려
요즘 극장가엔 범죄 스릴러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살인마와 그를 쫓는 형사의 숨 막히는 추격전은 한국영화 전성기를 느끼게 해준다. 7년 전에도 유영철 사건을 다룬 영화가 개봉되어 크게 흥행을 했다.
나도 그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본 이유는 유영철 사건 직후 구명시식을 했기 때문이다. 한 남자가 집을 샀는데 그 집이 하필 유영철 사건과 관련된 집이었다. 돌아가신 집주인 할머니를 위로하는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유영철에게 희생당한 수많은 영가들이 나타나 억울함을 호소했다.
뜻밖이었다. 예상했던 구명시식이 아니었기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깊은 한을 품고 눈을 감은 영가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막막했다. 게다가 희생된 영가들은 실제 피해자 수보다 많아 보였다. 살인 방법도 다양했고, 언론에 전해진 것보다 훨씬 끔찍했다. 인간으로서 어떻게 이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지 나도 모르게 구토가 치밀어 올라 구명시식을 중간에 접을 수밖에 없었다.
구명시식에 나타났던 그녀들은 하나 같이 미인이고 꿈이 많았다. 모두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형편이었다. 만약 이 영화를 만든 관계자가 죽은 그녀들을 직접 만났다면 어떻게 영화를 만들었을지 궁금했다.
실제 범죄사건 영화는 죽어간 희생자들을 영원히 잊지 않도록, 다시 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객들을 각성시키고 있다. 그러나 다분히 걱정스러운 면도 있다. 영화 속 살인 방법이나 살인충동들이 혹여 제2, 제3의 범죄를 유발시킬 우려도 있는 탓이다.
과거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모델로 했던 영화도 그랬다. 영화를 실제 찍은 장소도 화성이 아니었고, 영화에서 단 한 번도 ‘화성’이라는 지역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모두가 그 사건에 대한 악몽으로 불편했다.
최근 실제 사건을 다룬 범죄영화의 제작이 늘고 있다. 흥행에도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가공 사건의 틀을 깨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다. 관객들은 ‘실화’를 다룬 영화이기에 더욱 살갑게 느낀다. 국민 모두가 이 사건을 알고 있기에 어떤 사건을 모델로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큰 광고효과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사건의 피해자, 희생자들은 영화를 영화로 받아들일 수 없다. 영화로 인해 다시금 아픈 상처를 기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의 소재는 자유다. 그리고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 해도 실제 범죄사건을 모델로 한 영화를 만들 때는 늘 사건의 희생자들을 가슴에 담고 영화 만들기에 나서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