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어머니가 남긴 사진과 통장
성공한 사람 중에“나는 자수성가했다.”말하는 사람이 있다. 많은 고생을 겪으면서 혼자 힘으로 이 자리까지 왔다는 뜻일 것이다. 정말 본인의 능력으로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어렵게 사업에 성공한 분이 있었다. 낳아준 부모가 있었지만 어릴 적 남의 집에 입양되어 사실상 고아나 다름없는 유년시절을 보내야했다. 정말 안 해본 일 없이 노력한 결과로 지금에 이르렀다고 했다. 말 그대로 입지전적인 자수성가의 본보기였다.
수 년 전 “이제 사회에서 성공도 하셨으니 친어머님을 찾고 싶진 않으세요?”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뜻밖의 내 권유에 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를 내버린 어머니를 왜 보고 싶겠냐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미운 정 고운 정이라고, 사실 그의 마음속 한 구석엔 한 번쯤은 재회를 갈구하고 있었다. 만나서 ‘왜 나를 버렸습니까?’하고 속 시원히 따지고 싶었던 것.
그는 6.25 전란으로 희미해진 기록들을 더듬어 찾기 시작했다. 지성이면 감천이었는지 어렵사리 친어머니의 거주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주소 적은 종이를 들고 한 걸음에 달려간 곳은 달동네의 어느 허름한 판자촌 월세 방.
그러나 한 발 늦었다. 어머니는 며칠 전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어머니가 남긴 것은 빛바랜 흑백 사진 한 장과 적금통장이었다. 사진 속에는 헤어지기 직전에 찍은 듯한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어머니의 생전 행적을 듣고 그는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가난 때문에 자식과 헤어진 뒤로 항상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자식이 마음에 걸려 편한 잠자리도 마다했다고 한다.
새벽에 정화수를 한 그릇 떠 놓고 어딘가 있을 자식을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들이 찾아오면 건네 줄 적금통장을 손에 꼭 쥐고 세상을 떠나셨다는 얘기를 듣고 그는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고. 내 성공 뒤에 어머니의 정성이 있었음을 모르고 오직 자기 노력 때문이었다고 착각한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힘을 알지 못한다. 자수성가라고 말한 그 사람처럼 시간이 지나고 빛바랜 사진과 통장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지 않은 사랑이 함께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입시철이 다가오면 전국 사찰이나 교회에는 학부모들로 넘쳐난다. 오늘도 자식을 위해, 손자를 위해 아픈 무릎을 다독이며 몇 시간씩 영험하다는 산을 오른다. 이런 부모의 마음을 자식은 알까. 아이러니 한 것은 그렇게 자식을 위해 지극정성으로 빌고 있는 당사자들도 젊었을 적엔 부모의 심정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