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삶과 죽음은 하나' 영혼관의 변화
노(老) 형사가 있었다. 평소 그의 행동거지를 보면 범죄자인지 형사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였다. 하지만 다들 그를 베테랑이라고 말한다. 오리무중의 사건이 터지면 젊은 형사들은 쩔쩔 매지만 노 형사는 눈빛부터 달라진다.
노 형사는 설렁설렁하면서도 범인의 행적을 추적하여 사건을 해결한다. 특별한 비결은 없다. 단지 한 가지 일에 오랫동안 의식을 집중하여 무섭게 직감이 발달한 탓이다. 취조당하는 범법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수사관도 바로 이런 베테랑 노 형사다. 베테랑 형사는 같이 웃으면서 범법자의 심리를 읽어낸다. 군대에서 고참병이 군기가 빠진 것 같지만 불시의 일이 벌어지면 신속 정확하게 처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구명시식을 시작한 지 30여 년이 가까워 온다. 구명시식도 연륜이란 게 쌓이는 걸까. 여러 번 참석했던 사람들이 ‘왠지 모르게 구명시식이 좀 느슨해졌다’고들 한다. 글쎄, 느슨함이라니. 그런 말을 들으니 최근 들어 영가를 대하는 나의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영가가 아름답게 보였다.
나는 6세 때 처음으로 영가를 목격했다. 팔 다리나 눈이 없고 피를 흘리며 원망의 눈빛을 보내는 영가들. 이 때문이었을까. 그 후로도 수많은 영가와 대면했지만 영가는 두렵고 슬픈 존재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죽음이 반드시 슬픈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마을에서 상여가 나가면 상주는 슬피 울지만 만장기를 앞세운 아이들은 흥에 겨워 천진하게 행진한다. 슬픔과 흥겨움의 묘한 대조. 나도 그 아이들처럼 최근 구명시식에선 천진하고 순수하게 리듬을 타고 있다. 엄숙하고 슬픈 구명시식이 아니라 축제 같은 구명시식을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날 구명시식 중에는 온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참석자들의 의식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벼락같이 화를 냈었다. 하지만 요즘은 웬만하면 웃으면서 넘긴다. 삶과 죽음은 하나요, 죽음을 웃음으로 맞아들이듯 나의 영혼관이 변하고 있다. 나뿐만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에 따라 영혼관도 변해왔다.
아테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나라에서 모시는 신들을 믿지 않았다. 항상 자기 속에 있는 수호령의 지시에 따라 행동했다. 하지만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이유로 그에게 독배가 내려졌다. 영혼관이 다르다는 이유에서였다. 자기와 다르다는 이유로 절대 진리를 모욕했다고 하여 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이 이단으로 몰려서 핍박과 죽임을 당했다. 영혼관도 옷의 유행처럼 시대의 유행을 탄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종교가 어머니가 아니라 애인이라고 말해왔다. 목숨과 바꿀 정도로 엄격한 영혼관이나 종교관도 변한다. 과연 진리가 절대불변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유일한 진리가 있다면 ‘변하는 것’ 그 자체가 아닐까. 슬픔도 축제가 되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