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하우스맨과의 인터뷰
1989년 내가 르포기자로 활동하고 있을 무렵 통역사와 함께 하우스맨을 만나기 위해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도착했다. 하우스맨은 해방 후 미군정 대위로 근무하면서 국군 창설에 깊이 관여했으며, UN군사령관 특별고문, 제8군사령관특별보좌관 등 약 40년 동안 한국의 군 정보 관련 요직을 두루 거친 거물이었다.
"여기입니다." 하우스맨의 집은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했다. 다만 그의 남다른 한국 사랑을 보여주듯 집둘레에 무궁화가 활짝 피어있었다. 찰칵, 무궁화를 찍는 사이 하우스맨이 나와 우리를 반겼다.
인터뷰하는 동안 그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마치 수천 번 연습이라도 한 듯 우리 쪽 예상 대답과 거의 일치하는 말만 했다. 지금은 은퇴한 정보계의 거물이지만 한-미 양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비밀을 지키기로 다짐한 듯했다.
할 수 없이 나는 하우스맨을 자극하기로 했다. 옆에 통역사가 있었지만 하우스맨을 인격적으로 모욕하는 말은 통역하지 않을 것 같아, 아예 서툰 영어지만 내가 직접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처음 쓰는 영어였다.
"40년 가까이 한국에 계시면서 한국말을 하나도 할 줄 모른다고 하시니 정말 유감입니다. 당신 같이 한국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한국을 배후조종했다는 사실이야말로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순간 하우스맨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못한다는 한국말로 유창하게 자신의 입장을 변호했다. "그런 말 하지 마시오. 그레이하운드 버스가 승객을 가득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 앞의 차가 섰다고 급브레이크를 밟는다면 어떻게 되겠소? 많은 승객을 태운 버스라면 앞의 차를 박고서라도 전진해야 승객이 다치지 않소. 당시 한국은 그런 상황이었단 말이오."
유창한 한국말이 들통 난 하우스맨은 그제야 내 작전에 말려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웃었다. 그는 정보를 캐기 위해 일부러 무례하게 굴었던 나를 오히려 '솔직한 사람'이라며 좋아했다. 그리고 하우스맨은 먼저 떠난 아들과 딸, 그리고 정신과 질환을 앓고 있는 딸을 위해 기도를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2006년 나는 일행과 함께 미국여행을 하는 중에 텍사스 오스틴에 잠시 들렸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그곳에 살고 있던 한 명사의 집을 찾아갔다. 그가 떠난 집엔 무궁화만 쓸쓸히 피어있었다. 막 발길을 돌리려던 찰나, 하우스맨 영가가 나를 불렀다. "오랜만이오." 극적인 재회였다. "이젠 죽었으니 내가 가진 비밀로부터 자유롭고 싶소."
하우스맨과의 인터뷰는 모래더미 속에서 작은 모래알 정도의 비밀을 밝힌 정도지만 나는 그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역사의 미스터리를 하나씩 밝히는 계기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