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house.gov 캡처
이더리움 '머지(Merge)' 업그레이드는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방향에 부합한다. 지분증명(PoS) 방식으로의 전환을 통해 전력 사용량이 획기적으로 감소해서다. 지난 8일(현지시간)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이 발표한 '가상자산 채굴의 환경적 영향에 대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분증명은 거래를 검증하기 위해 컴퓨팅 성능이 아닌 위험자산에 의존한다. 이로 인해 작업증명(PoW) 방식보다 전력 사용량이 훨씬 적다. 지분증명 방식 암호화폐의 연간 전력 사용량은 전 세계 전력 사용량의 0.001%에 못 미치는 2.8억 킬로와트시(kWh)다. 이는 작업증명 방식 암호화폐 전력 소모량의 0.25%에 불과한 수치다.
미 규제당국은 이날 암호화폐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 및 지역과 환경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는 각종 조치를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의미한 변화가 없는 경우 의회 차원에서 에너지 집약적인 합의 메커니즘 사용을 제한하거나 제거하기 위한 입법을 고려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도이치뱅크의 마리온 라부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에서 "이더리움 스테이킹 시스템이 친환경적인 대안이라고 판명되면 규제당국이 작업증명 방식의 암호화폐에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도록 강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전문가 사이에서는 기관투자자가 본격적으로 이더리움 투자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게이브칼 리서치의 윌 데니어 연구원은 배런스에서 "이더리움이 탄소발자국 감소로 ESG 관점에서 매력적인 투자처로 떠오르면서 기관투자자에게 채택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더리움 스테이킹의 높은 수익률이 투자자 유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스테이킹은 디지털자산을 블록체인 검증에 활용하도록 맡기고 보상으로 암호화폐를 받는 서비스다. 지분증명 방식에서 가능한 서비스이며 비트코인 같은 작업증명 알고리즘에서는 불가하다. 라부는 "이더리움에 토큰을 스테이킹하면 높은 수익률을 보상받을 수 있기 때문에 채권을 비롯한 각종 금융상품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더리움 재단에 따르면 스테이킹 이자율은 머지 이후 최대 7%에 이를 전망이다.
◆ 증권 가능성·가격 하락세는 '변수'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의장. 사진=로이터 제공
이더리움이 지분증명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ESG' 규제는 피했지만 '증권' 규제를 적용받을 가능성이 생겼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게리 겐슬러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의장은 "코인 보유자가 네트워크에 자산의 일부를 주어 금전적 보상을 얻는 지분증명 방식은 증권 규칙에 포함될 수 있다"며 "스테이킹 과정이 완전히 공개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브렛 해리슨 FTX US CEO는 이날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스테이킹을 통해 수익을 얻는 과정이 증권에 해당하는지 알아내려면 복잡한 법적 분석이 필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현재 코인 발행사들은 다수의 암호화폐를 '증권'으로 규제하려는 SEC보다, 상품 선물 거래 위원회(CFTC)의 규제를 받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머지' 이후 이더리움 가격이 급락세를 보이는 점도 향후 전망을 불투명하게 하는 변수 중 하나다. 전문가들은 채굴 보상이 사라지면 발행량이 감소해 이더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었다. 20일 한국시간 기준 오전 10시30분 현재 이더리움은 업그레이드가 완료된 시점인 지난 15일에 기록한 1503.5달러에 비해 9.3% 하락한 개당 1363.4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데니어는 "수요가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발행량 감소는 이더 가격 상승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면서도 "이미 가격에 반영됐을 수도 있고 실제 발행량 감소 폭이 몇 달 전 예상했던 수준에 비해 작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더리움 선물에 대한 자금 조달 비율(Funding rates)은 한 달 넘게 음수를 기록하면서 투자자들이 이더 가격 하락에 베팅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암호화폐 데이터 업체 카이코는 투자자들이 이더 현물을 매입하면서 헷지 차원에서 선물을 공매도했거나, 이더리움 하드포크로 경쟁 가상자산 출현이 예상되면서 하락에 베팅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트랜잭션 속도나 가스비 등 이더리움의 확장성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샤딩(Sharding) 업그레이드가 2023~2024년에 예정되어 있는 만큼, '머지'를 통한 합의방식 변경만으로는 유의미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