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지갑인 월급쟁이들과의 과세형평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이들 자영업자들의 과표현실화 작업의 일환으로 지난해부터 국세청이 벌이고 있는 '대역사'의 세 번째 장입니다.
이날 3차 조사착수와 함께 국세청은 2차 세무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미 보도된 대로 조사를 받은 자영업자들은 현금수입은 아예 신고를 하지 않거나 소득의 절반 이상을 아내 명의로 숨겨 그 돈으로 부동산 투기를 일삼는가하면 해외관광을 무려 106회나 갔다오는 등 빼먹은 세금을 가지고 호화판 생활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날 국세청의 발표는 국내 전 언론의 주요 뉴스로 장식 되었습니다. 물론 국민들도 "국세청이 참 잘한다"는 반응들이었습니다. 국세청이 수 십년간 방치해 오던 자영업자들에 대한 과세강화 작업을 이번에는 제대로 하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날 기자에게는 국세청이 발표한 '폼 나는' 실적과 함께 현장에서 발로 뛰고 있는 수 많은 국세공무원들의 애환도 들려왔습니다.
○…국세청이 2차세무조사 결과를 거창하게 발표하던 16일. 국세청 기자실에서 카메라 플래쉬가 터지던 그 순간 많은 국세공무원들은 3차 세무조사에 나서고 있었습니다. 이날 3차 세무조사 대상자는 전국적으로 362명에 이르는 고소득자영사업자였습니다.
이날도 2차 세무조사 때와 다름없이 조사국 직원들이 총동원되어 해당 자영사업자를 급습,세무조사에 필요한 관련 장부를 영치했습니다.
보통 심층조사(특별세무조사)는 조사가 착수되는 날까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집니다. 무조건 아침 8시까지 사무실로 출근하라는 통보만 하고 조사 착수당일 출근과 동시에 장부영치대상자를 통보 받고 오전 10시까지 현장에 도착해 동시 다발적으로 착수하게 됩니다.
국세공무원들 사이에서 '염'하러간다는 말로 통용되는 장부영치 작업에서 국세공무원들은 조사대상 사업자의 반발이라는 장애물을 만나는 것은 '다반사'입니다.
"왜 우리가 조사대상이냐. 조사하는 근거가 뭐냐.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장부를 못 주겠다"는 등등 납세자들의 버티기는 예사롭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나 국세공무원들은 수 십년 동안의 '노하우'를 총동원, 납세자들을 설득, 소기의 목적을 달성합니다.
옥신각신 실랑이 끝에 영치 작업이 끝나면 보통 오후 3~4시를 넘기게 됩니다.
그나마 영치작업이 순조로운 곳에서는 점심식사라도 할 여유가 있지만 그렇지 못한 곳으로 나간 직원들은 점심식사는 커녕 납세자들을 설득하느라 시간을 훌쩍 보내버리는 것이 예사라고 합니다.
○…장부영치를 당하는 사업자들의 애처로운 눈길, 이 것도 염하러 나간 국세공무원들을 가장 괴롭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인간입니다. 납세자들의 애처로운 눈빛을 보면 솔직히 일 할 맛 안납니다. 외면하는 것이 방법이죠."
이처럼 인간적 측면의 애환도 있지만 십 수년간 유지되어 온 국세청의 장부영치 조사시스템의 후진성(?)도 조사요원들의 힘을 빠지게 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16일 서울의 강남지역으로 장부영치를 나갔던 한 조사요원은 "아니, 국세청에서 박스도 없이 영치하러 나왔습니까?"라는 한 사업자의 말에 그만 풀이 죽었습니다.
이날 장부영치에 나섰던 대부분의 국세공무원들은 영치한 서류를 담을 박스를 현장에서 구입해야 했고, 또 장부를 옮길 트럭을 손수 '수배'해 실어 나르는 수고도 감내해야 했습니다. 어떤 기업의 장부만 영치해 오라는 추상같은 지시만 있을 뿐 나머지는 현장에 나간 직원들이 모두 '자급자족'해야하는 시스템 인 것이지요.
"박스 구입비(개당 1800원)와 트럭 이용료(5만원 상당)는 저희 출장비(1인당 1만원)로 대체했습니다. 물론 나중에 절차를 밟아서 청구하면 나오긴 하지만…"
"국세청에서 얼마 전에 장부 영치 전용 박스를 제작하지 않았었나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박스요. 그것 몇 개 안됩니다. 이처럼 대대적인 영치조사 때는 턱없이 부족하죠. 영치조사,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별반 없어요". 기자의 질문을 머쓱하게 했습니다.
납세자들에게 '공포'의 존재인 국세청 조사요원들이 영치한 장부를 담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박스를 구하는 모습은 자신이 세무조사를 받는다는 사실보다 더 큰 의아함을 납세자들에게 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는 것이 이날 영치조사를 나갔던 한 국세공무의 전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3시경 사무실에 도착해 늦었지만 동료들과 함께한 '꿀맛' 같은 점심으로 하루의 피로가 가셨다"고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