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문제(대통령 친인척 관련)로 시작한 세무조사였다는 의혹. 명성그룹은 단 한번의 세무조사로 '공중분해' 됐다. 레저산업의 기린아(麒麟兒)는 그렇게 사라졌다.
1991년 국세청은 현대그룹 비자금을 밝히겠다며 전격적인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정계진출(대선출마)를 막기 위한 청와대의 정치적 암약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혹이 쏟아졌다.
결과는 추징액 1361억원. 목표했던 바(故 정 명예회장의 대선출마)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본때'는 보여준 셈이다. 정치적 목적이 가미된 세무조사의 무서움을.
2001년 DJ정부는 중앙언론사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명분은 정기조사. 그러나 이를 믿는 사람은 국세청 수뇌부 외에 아무도 없었다. 정권에 날선 필봉(筆鋒)을 휘두르던 언론사를 길들이기 위한 세무조사였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눈치챌만한 것이었다.
세무조사는 국세행정의 꽃이다.
부정부패를 막고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세정의)투명성을 확보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러나 그 가진 힘을 고려할 때(알짜기업, 명성그룹이 '한 방'에 날아가지 않았는가) '최소한'으로 행해져야 하며 또 세무조사 자체의 투명성과 공정성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세무조사라는 강력한 권력은 정치성, 혹은 정치적 목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사회적 투명성, 국세청의 투명성이 제대로 확보되지 못했던 시절(2000년대 이전)에는 더욱 그러했다.
최근에는 이 같은 경향이 많이 누그러진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최근 몇 년동안 국세청이 실시한 (밝혀지거나 혹은 밝혀지지 않거나)일련의 세무조사 중 정치성 의혹을 받은 세무조사는 없었으니까.
국세청 세무조사와 관련 최근 한 국회의원이 '이색적인' 주장을 내놔 눈길을 끌었다. 2005년 세무조사 실적을 출범 전인 2002년과 대비해 볼 때 조사건수로는 2만4489건에서 2만5944건으로 늘어났고 부과세액도 총 3조1741억원에서 4조3169억원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조사건수의 지역별 분포. 대구청(대구, 경북, 경남 지역관할)이 1363건(2002년)에서 2079건(2005년)으로 53%가량 늘어났지만 서울청(서울지역), 광주청(호남지역)은 각각 17%, 3% 줄어들었다는 것이다(나머지 '수치'는 생략한다).
요지는 간단하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서울과 호남지역(참여정부는 민주당, 즉 호남지역의 기반을 안고 출발했다)기업들에 대한 세무조사는 감소한데 반해 대구와 경북지역 세무조사는 늘어났다는 것.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국세청도 대략 민감하게 여기고 있는 부분)은 바로 '지역감정'이다. 지역감정은 대한민국의 고질병임과 동시에 '색깔론'과 더불어 대한민국 정치판의 가장 대표적인 정치적 도구다.
다시 말해 겉으로는 "국세청 세무조사의 지역별 차별이 심하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일부러(?)호남지역과 대구·경북지역을 나눠 편차를 가름해 앞 선에 내세운 것은 전통적 정치도구인 지역감정을 자극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묻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하필이면 '세무조사'가 희생양이 됐다는 점에서 분명 국세청은 억울할 수도 있다. 실제로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니 어쩔 수 없다. 사회투명성이 더욱 높아지면서, 국세행정의 투명성이 더욱 높아지면서 정치적 목적을 가진 세무조사는 더 이상 없다(?). 다만 정치적 목적을 가진 세무조사 행정에 대한 '해석'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는 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치현실을 비춰볼 때 지역감정과 색깔론은 쉽게 사라질리 만무하다. 다소 억울할 수 있겠지만, 세무조사의 정치적 해석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현실을 뜯어고치지 않는 이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