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업계, "환자비밀보호 때문에…자료제출 불가능"
국세청, "가용 행정력 동원 지도…세무조사 가능성"
본격적인 연말정산 시즌을 앞두고 국세청이 근로자들의 연말정산 간소화를 위해 의료업자들에게 소득공제증빙서류를 제출할 것을 독려하고 있는 가운데 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 치과의사협회, 약사회 등이 시행유예를 요구하며 집단으로 거부할 태세여서 자칫 국세청의 연말정산 업무에 큰 차질이 우려된다.
올해부터 근로자들은 연말정산과 관련한 의료비공제증빙을 지난해 개정된 세법에 따라 국세청 홈페이지를 통해 클릭한번으로 다운로드 받아 제출할 수 있지만, 의료기관들이 끝내 협조하지 않으면 지난해처럼 일일이 의료기관을 돌며 영수증을 챙기는 불편을 감내해야 한다.
이에 따라 국세청은 지방국세청과 세무서를 중심으로 관내 의료업자와의 간담회 등을 통해 지속적인 행정지도를 계속할 방침이지만, 이들이 끝내 자료제출을 거부할 경우 가용한 행정력을 총동원할 태세여서 이들 업계에 대한 세무조사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세청은 9일 "지난해말 의료비·보험료·카드사용료·교육비 등의 소득공제용 증빙자료를 발급하는 자가 국세청에 제출토록 세법이 개정, 올해부터 근로자들의 연말정산이 간소화됐다"며 "그러나 일부 의료업체가 제출을 거부해 차질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국세청에 따르면 의료비공제와 관련해 반발하는 단체는 치과의사회와 의사회, 한의사회, 약사회 등 4개 의료기관단체로 대표적인 현금수입업종으로 꼽히는 업체와 관련돼 있다. 특히 치과의사회와 의사회의 반발이 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의료기관들이 근로자들의 연말정산 편의에도 불구 시행유예를 요구하며 반발하는 이유는 ▲환자의 개인정보유출 우려 ▲비보험자료의 경우 전산관리가 안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다 ▲환자 개개인에게 확인 절차 필요 등 지나친 납세협력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점 등.
특히 대한의사협회의 경우는 9일 "소득공제증빙서류 제출의무화를 정한 소득세법 규정은 법률자문결과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영업의 자유 및 평등권을 제한하는 행위로 위헌소지가 다분하다"며 "헌법소원 청구 등 적극적인 법적 대응도 불사할 것"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치과의사협회 관계자는 "국세청은 소득공제증빙서류에 환자의 성명과 치료날짜 및 치료비만 기재할 뿐 병명은 기입하지 않기 때문에 환자의 개인정보유출위험은 없다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병명기입은 없다고 하더라도 처녀의 산부인과 치료전력이 드러나거나, 성인남성의 비뇨기과 치료사실 자체는 개인으로서는 기본적 인권을 침해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그러나 의료업체들이 주장하는 이같은 명분의 이면에는 소득노출을 꺼리는 복선이 다분히 깔려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어차피 산부인과이든 비뇨기과이든 보험급여항목 청구를 위해 의료기관들은 건강보험공단에 해당자료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
이와 관련 국세청은 "세무서에서 의료업계 관계자들을 만나 간담회 형식으로 세정협조를 안내하고 있다"며 "전체 소득공제대상 의료비의 60∼70%를 차지하는 대형 종합병원 등 대다수는 적극 협조를 약속했지만 일부 현금수입업종에서 반발이 있다"고 밝혔다.
국세청으로서는 법을 다시 개정하지 않는 이상 집행기관으로서 시행하지 않을 수 없는 만큼, 세법의 근거규정에 따라 가능한 한 행정지도를 통해 이들의 자료제출을 적극 독려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들이 끝내 자료제출을 거부할 경우의 제재수단과 관련 국세청은 "자료제출을 끝내 거부하더라도 가산세 등의 마땅한 제재수단이 없는 실정"이라며 "이 경우는 어쩔 수 없이 가용한 행정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국세청이 구체적으로 '세무조사'라는 언급은 피했지만, 국세청 행정력의 대표적인 동원수단인 세무조사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