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경영진의 영장이 잇따라 기각되는 수모를 겪은 검찰이 막판에 대반전을 이루기 위한 묘책을 준비하고 있다.
검찰은 구속영장 정도의 소명(증명보다 낮은 단계의 입증)도 요구하지 않는 체포영장을 두 번이나 기각당한 충격에서 조금씩 회복되면서 다시 론스타 임원들의 체포영장을 받아낼 수 있는 비장의 카드를 찾는 데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도 영장이 기각된다면 8개월을 끌어온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 수사는 종착역에 닿지도 못하고 도중 하차해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검찰 수뇌부의 판단 때문이다.
◇ 영장 재청구 기각 나쁘지 않았다(?) = 검찰은 이달 3일 론스타 임원들의 체포촵구속 영장을 재청구하면서 토씨 하나 고치지 않았다.
영장전담 판사가 소명 부족을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는데도, 영장 내용을 보완하지 않고 그대로 다시 청구한 것은 사법부 처지에서 보면 막무가내식 도전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무리수였다.
예상대로 법원은 첫 기각 때보다 더 자세한 논리를 근거로 영장을 기각했다.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동료 판사의 결정을 존중하는 게 법원의 분위기이고 보면 검찰이 기각 사유를 보완하지 않고 그대로 영장을 제출한 것은 재기각을 각오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러나 검찰이 완패(完敗)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검찰은 첫 영장 기각 후 '공익'을 내세워 2003년 론스타가 외환카드 주가를 조작한 정황을 공개하면서 '시장에 대한 살인행위', '우리 국민이 봉인가' 등 극단적 표현으로 여론에 호소해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검찰이 감성적인 언어로 영장 기각에 불만을 드러내자 론스타의 불법 여부를 밝혀내라는 요구가 들끓기 시작했고, 포털사이트 등을 중심으로 법원의 영장 기각을 비판하는 여론도 광범위하게 형성됐다.
검찰 처지에서는 자존심의 상징인 대검 중수부 영장이 연거푸 기각되는 충격을 겪었지만, 아직 한국에서 판을 거두지 않은 론스타 본사를 압박하면서 론스타의 불법을 철저하게 수사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두었다.
법원 내부에서는 검찰이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법적 판단에 여론을 끼워넣고 있다는 불만도 나왔지만 '확전'을 불러올 수 있는 불필요한 대응은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검찰 정공법으로 선회 = 대검 중수부는 재청구 영장이 기각되자 의외로 첫 번째 기각 때보다 법원을 향한 비판 수위를 낮춰 불만을 표시했다.
검찰은 "영장전담판사를 설득하지 못한 부분은 국민에게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호소하면서도 "현행 법 테두리 안에서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할 수밖에 없고, 존중하는 게 당연하다"고 몸을 낮추었다.
검찰은 첫 번째 기각 후 영장을 그대로 재청구한 것과 달리 전체 수사 일정을 수정하면서까지 시간을 두고 론스타 임원들의 증거인멸, 도주우려 등을 보완하고 추가 혐의를 담아 영장을 세 번째 청구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엘리스 쇼트 부회장과 마이클 톰슨 법률 이사에게 13일까지 입국하라고 여섯 번째 통보한 것도 체포영장 사유인 소환 불응의 정황을 다지려는 차원으로 볼 수 있다.
검찰은 유회원 론스타 코리아 대표의 신병확보가 경기고 동기이면서 론스타와 관련을 맺고 있었던 하종선 현대해상 대표나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국장의 혐의를 밝히는 데 필요하다고 보고 유 대표의 혐의도 영장에 보완하기로 했다.
수사팀은 론스타에서 하 대표에게 흘러간 20억원이 정당한 컨설팅 비용이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이 돈의 성격에 따라 더디게 진행되던 수사가 속도를 낼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고승덕 변호사 등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외환카드 허위 감자설이 주가 하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증거 자료도 이미 제출했다.
검찰의 정공법 선택은 다시 여론에 호소하면 국제적으로도 관심을 끌고 있는 이번 사건에서 전문성을 의심받게 되는 역효과를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 최후통첩 그 다음은 = 검찰은 '최후통첩'이라는 말로 이번 체포영장 청구가 현 상황에서는 마지막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한다면 검찰은 예정대로 범죄인인도를 청구해 론스타를 압박할 수 있다.
그러나 기각되면 검찰이 다시 영장을 청구할 명분도 약해질 뿐더러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다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검찰은 '악질적인 주가조작'이라며 론스타 본사 임원들의 조사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영장이 기각되면 사실상 이들에 대한 강제 수사 방법은 없어진다.
큰 틀에서 혐의를 인정한 법원의 첫 판단에 따르면 유 대표는 불구속 기소하고, 론스타 임원들은 신병을 확보할 때까지 기소중지(수배)를 하고, 혐의가 불분명하다고 본 두 번째 판단에 따르면 유 대표를 참고인 중지(중요한 참고인 진술을 확보할 때까지 수사를 중단하는 것)하고 본사 임원들은 기소중지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어느 쪽이든 검찰에는 '반쪽 수사'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시나리오다.
돌파구가 없지는 않다.
구속 수감된 이강원 전 행장이나 이 전 행장과 공모 관계로 지목된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등으로부터 유 대표나 론스타 본사의 역할과 관련된 새로운 진술을 이끌어내면 다른 혐의로 본사 임원들의 체포영장을 청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몇 달에 걸친 조사에도 굳게 입을 다물었던 관련자들이 새로운 사실을 털어놓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이번에도 영장이 기각되면 사실상 수사는 종결되고 공소유지에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검찰이 최후통첩 이후 꺼낼 마지막 카드가 무엇일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