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급등기, 저소득층 더 고통…“통화정책 통해 물가안정 필요”

한은, ‘팬데믹 이후 칩플레이션(Cheapflation)과 인플레이션 불평등’ 보고서 발표

韓, 칩플레이션 발생…저가상품 16.4% 오른 반면 고가상품 5.6% 상승

칩플레이션 원인, 수입 원자재가격 급격한 상승·저렴한 상품으로의 지출 전환

“정부, 고인플레이션 시기에 중·저가 상품 가격안정에 집중해 취약계층 부담 완화시킬 필요”

저소득층이 더 고통받는 칩플레이션(cheapflation, 저렴한 상품의 가격이 더 빠르게 상승하는 현상)은 물가급등기에 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통화정책을 통해 물가안정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저소득층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19일 '팬데믹 이후 칩플레이션(Cheapflation)과 인플레이션 불평등'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는 팬데믹 이후 주요국에서는 저렴한 상품의 가격이 더 빠르게 상승한 '칩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로 인해 취약계층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커지면서 인플레이션 불평등(inflation inequality)이 심화된 것으로 평가했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칩플레이션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고서에서는 팬데믹 이후 국내 가공식품의 가격수준별 상승률에 어떤 차이가 있었고 이로 인해 가계 소득계층별 실효물가에 어떤 변화가 나타났는지 분석했다.

분석을 위해 상품바코드별 판매금액·수량 등을 제공하는 대한상공회의소의 스캐너 데이터를 활용했다. 이중 가공식품 판매정보를 이용해 산출한 가공식품(이하 스캐너 물가지수)는 소비자물가지수(CPI)의 가공식품 가격과 비슷한 추이를 나타내고 있어 동 스캐너 데이터가 물가의 미시적 분석에 적합한 것으로 판단했다.

스캐너 데이터를 이용해 상품의 가격분위별(4분위)로 물가지수를 산출한 결과 우리나라에서 팬데믹 이후 저가 상품의 가격이 더 크게 상승한 '칩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상품 가격분위는 동일 품목內 상품들을 2019년 평균 가격을 기준으로 1분위(저가)부터 4분위(고가)로 구분했다. 가격분위별로 2020.1월~2023.9월 기간 중 누적 상승률을 구해보면 1분위 저가상품 가격 상승률이 16.4%인 데 비해 4분위 고가상품 가격 상승률은 5.6%에 그쳤다.

전년동월대비 상승률을 보면 팬데믹 이전에는 분위 간 상승률의 격차가 미미했으나 이후 인플레이션 급등기에는 저가-고가 상품 간 상승률 격차가 크게 확대되는 칩플레이션이 나타났다. 반대로 2023년부터는 디스인플레이션의 진전으로 이전 기간 크게 올랐던 1분위 상품의 가격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둔화되면서 상승률 격차가 줄어들었다.
한은은 국내 칩플레이션이 주로 수입 원자재가격의 급격한 상승(공급요인), 저렴한 상품으로의 지출 전환(수요요인) 등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했다.

공급 측면에서는 팬데믹 이후 수입 원자재가격 급등으로 저가 상품의 가격상승률이 더 높았던 것으로 추정됐다.

저가 상품의 제조 과정에서는 투입비용을 낮추기 위해 국내산 재료보다는 가격이 비교적 낮은 수입원자재가 많이 사용되는 경향이 있는데 팬데믹 이후 글로벌 공급 병목, 러-우 전쟁 등으로 수입 제조용원재료의 국내공급물가가 국내생산·출하 원재료에 비해 더 크게 상승했다는 것이다.

한은은 저가 상품의 경우 보통 마진이 작아 비용충격에 대한 흡수력이 낮다며 이때 수입 원자재가격이 급등하게 되면 저가 상품의 판매가격에 상당부분 전가되며 이것이 칩플레이션을 초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수요 측면에서의 칩플레이션 요인으로는 고인플레이션 상황에서 가격이 좀 더 저렴한 상품으로 수요가 전환된 점을 꼽았다.

일반적으로 가계는 고인플레이션 시기에 실질소득 감소에 따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전에 소비하던 상품과 비슷하지만 더 싼 상품을 구매하거나 같은 상품이더라도 더 싸게 판매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소비행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한은은 실제 연도별로 상품 가격분위별 매출액 비중을 보면 저가 1분위 상품의 매출비중은 팬데믹 이후 늘어난 반면 고가 4분위의 매출비중은 줄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보다 저렴한 상품이나 판매점으로의 수요 전환으로 해당 상품 가격은 더 높아지게 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한은은 이러한 칩플레이션이 가계 소득계층 간 실효물가의 격차를 벌림으로써 인플레이션 불평등(inflation inequality)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각 가계가 소비하는 품목의 구성(consumption basket)이 다르기 때문에 실제 경험하는 물가에 차이가 있지만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소비품목 구성이 완전히 동일한 경우라도 저소득층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상품을, 고소득층은 고가 상품을 주로 구매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상품의 가격분위별로 상승률이 상이하다면 각 소득계층의 실효물가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각 소득계층이 같은 품목 내에서 저가·고가 상품에 대해 얼마나 지출하는지를 가정한 후 스캐너 물가지수의 상승률 데이터와 결합해 계층별 실효물가를 추산해 본 결과 2019.4/4~2023.3/4분기중 하위 20% 저소득층 실효물가의 누적 상승률(13.0%)은 상위 20% 고소득층(11.7%)에 비해 1.3%p 높게 나타났다.

한은은 이러한 칩플레이션 효과(19.4/4~23.3/4분기 기준 1.3%p)에 소득분위별 소비품목 구성 차이에 따른 물가상승률 격차(19.4/4~23.3/4분기 기준 1.1%p)까지 더해지게 되면 가계 소득분위별 인플레이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된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분석 결과 팬데믹 이후 우리나라에서 저렴한 상품의 가격이 더 크게 상승하는 칩플레이션이 확인됐다면서 이는 저소득층이 고소득층에 비해 더 높은 인플레이션을 경험했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입 원자재가격 급등과 저가 상품으로의 지출 전환이 칩플레이션을 야기한 주된 원인이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한은 조사국 물가동향팀 조강철 차장·위승현 조사역은 "저소득층이 더 고통받는 칩플레이션은 물가급등기에 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통화정책을 통해 전체적으로 물가안정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결국 저소득층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정책 측면에서는 향후 인플레이션이 높은 시기에 특히 중·저가 상품의 가격안정에 집중함으로써 취약계층의 부담을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며 "해외공급 충격을 완충하기 위한 할당관세나 가격급등 품목에 대한 할인지원 시 중·저가 상품에 선별(targeted) 지원을 하는 방안 등을 고려해볼 수 있겠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