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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한 자루와 B4용지, 업무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 그리고 샘솟는 아이디어, 스쳐 지나가는 아이디어를 느린 말로 표현하자니 기어코 말을 더듬고야 마는 사람, 정과 의리가 깊은 경상도 사나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전문위원으로 파견된 이현동 서울지방국세청 조사3국장에게 붙여진 수식어들이다. 이현동 국장의 책상 위엔 언제나 연필 한 자루와 B4용지 그리고 지우개가 놓여져 있다. 업무개선 |
"○○○사무관 이것 좀 한번 연구해 봐." 자신의 아이디어를 스스로 구체화시켰다고 생각됐을 때 이 국장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스스로 이만큼 고민했으니, 동료직원들의 생각도 같을까 알아보려는 마음에서다. 이 과정을 거쳐 확신을 갖게되면 실제 정책으로 연결시킨다.
법규과의 창설을 비롯해 현재 국세청이 자랑스러운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는 ▲부실과세방지시스템 ▲법령정보시스템 ▲불복통합관리시스템 등도 이런 과정을 통해 세상의 빛을 봤다.
이 때문에 그에겐 '국세청에 가장 필요하지만, 또 가장 국세청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수식어도 따라다닌다. 만들어진 제도를 집행하는 기관에서 여러 가지 새로운 제도를 늘 구상하기 때문이다.
■ 같이 있으면 같이 고민해야 한다
이현동 국장이 국세청 법무과장일 때 상사였던 한 국장은 "수시로 새롭게 구상된 내용을 들고 오는데, 어떤 때는 너무 앞서가는 것이 많았다"며 "局 업무에서 속도조절을 하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다른 국에선 새로운 쇄신안 마련을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지만, 법무심사국에선 이 과장이 만든 여러 쇄신안 중에 너무 앞서가는 것만 빼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금요일 오후 주말을 기대하며 퇴근을 준비중이던 법무과 직원들에게 이 과장이 늘 하던 대로 누더기가 된 B4용지가 내려졌다. 아울러 월요일에 이에 대한 보고서도 올리라는 주문과 함께.
이 용지엔 선문답 식의 '제목' 한 줄만 있을 뿐 어떤 힌트도 없었다. 직원들은 고민을 했으나 해답을 쉽게 찾을 수 없어 토요일 특근을 해야했다. 특근은 일요일까지 이어졌다. 이 때 전화가 걸려왔다. 이 과장이었다. 그는 "일요일인데 나와서 고생이 많구먼. 나만 쉴 수 없으니, 나도 사무실로 나가겠다"는 것.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도 뭘 요구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 이런 저런 상황을 추측해 보고서를 만들었을 때 벽시계는 밤 10시. 10분만 더 지켜보고 그 때도 과장님이 안 나오면 들어가자고 직원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결국 직원들은 10시10분 퇴근했다.
이튿날 이 사무실에는 벼락치는 소리가 나왔다. 들이댄 보고서가 이 과장의 의중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과장은 "의중을 모르면 묻던가 아니면 고민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지, 과장이 나온다고 했는데도 나와보니 아무도 없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호통쳤다.
이후 이 부서에는 어떤 과제가 주어지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하는 풍습이 생겼다. 이 때 같이 일했던 한 직원은 "이 과장과 함께 일하면 일에 대해 같이 고민하는 것이 즐거웠다"며 "이 때만큼 일에 대한 애착을 가진 적도 없다"고 했다.
■ 법규과의 창설 그리고 국세법령정보시스템
그가 해 낸 일의 대표적인 것들은 국세청에 '과세품질'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과 이와 연관된 부실과세방지시스템마련, 또 국세법령정보시스템을 들여온 것이다. 또 이 과정에서 법규과의 창설도 있었다.
그가 법무과장을 하기 전까지 국세청의 예규업무는 소득, 부가, 법인 등 세원관리 부서에서 각각 맡아 해결했다. 그러나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아 과거예규와 현재예규가 섞이는 등 말 그대로 예규는 예규업무를 하는 사람만 알았다.
국세청 전체 직원들이 업무에 참조할 때 아무 때나 접근할 수 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체계적인 예규업무가 절실했다. 이 과장의 주창으로 법규과는 창설된 것이나 다름없다는게 국세청 사람들의 말이다.
또 부실과세문제 해결은 국세청의 영원한 숙제였다. 세무조사를 하는 조사요원마다 법령해석이 달라 통일된 법령해석 체계를 만들지 않고 부실과세를 척결한다는 것은 요원했다. 국세청 신뢰와 직결되는 중차대한 사안.
결국 빛을 보게된 것이 과세품질혁신제도다. 제도를 탄생시킨 이 과장은 당시 이주성 국세청장을 수십번을 만나고 또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현재 납세자들이 애용하는 국세법령정보시스템도 이 국장이 당시 디자인한 제도. 이 국장은 당시 세무사합격자들을 아르바이트로 동원, 과거 국세심사결정례 등을 정리하도록 하기도 했다.
국세법령정보시스템이 개통하기 전까지 일반 납세자는 물론 국세청 직원들까지 법령정보를 유료로 제공하는 사기업체를 이용해야만 했다. 납세자와 국세청 조사요원이 같은 눈높이에서 무료로 국세청이 제공하는 법령정보를 볼 수 있게 된 것.
■ 한번 맺은 인연은 영원히…겸손과 의리의 사나이
인간적인 면에서 그는 부하직원들을 잘 챙긴다. 그래서 맏형 같은 그를 따르는 직원들이 많다. 직원을 잘 챙기는 것이 어쩌면 관리자의 당연한 업무인지는 모르지만, 법무과를 떠난 지 한참이 됐는데도 연말 등에 찾아와 밥을 사주며 챙기는 간부는 그가 유일하다고 한다.
말을 많이 더듬는 그는 이 때문인지 상대의 의견을 많이 청취한다. 상대의 의견에서 현장감각 등 많은 이야기를 듣고, 방향을 제시하는데 그야말로 핵심을 곧바로 꿴다.
겸손도 그의 큰 장점. 그와의 첫 대면에서의 느낌은 다가서기 쉽다는 것. 그러나 이는 오해다. 외유내강이다. 그러나 한번 마음을 튼 사람과는 관계가 오래간다.
이현동 국장은 1956년 경북 청도 출신이다. 경북고와 영남대 행정학과(성대 경영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다.
행시 24회에 합격해 국세청과 인연을 맺었다. 경인청에서 조사업무를 비롯해 ▲구미서장 ▲서울청 조사1국1과 ▲국세심판원 ▲서울청 조사2국2과장 ▲서울청 조사2국1과장 ▲국세청 법무과장 ▲대구청 조사1국장(부이사관 승진) ▲중부청 납세자보호담당관 ▲서울청 조사3국장을 지냈다.
지난달 인수위 파견이 결정됐을 당시 "인수위 파견을 했다고 해서 우대를 받는 시대는 아닌 것 같다"며 "이명박 정부 5년의 밑그림을 그리라는 뜻에서 부름을 받은 만큼 국민이 보다 편안하게 사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정책이 나오도록 혼을 던져 일하겠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