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재정수요는 공적자금, 복지지출 등으로 급증하는 추세에 있어 세원확보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잠재세원인 사채시장 등 우리나라 지하경제의 규모를 추정해 보고 시사점을 알아본다.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지하경제(black economy), 혹은 그림자 경제(shadow economy)로 불리는 경제활동들이 존재한다. 이는 주로 제도금융권 밖의 사채금융 시장, 탈세를 목적으로 한 무자료 거래, 비자금 조성, 자영업자들의 허위 소득 신고 등을 말하며 이 밖에도 뇌물수수, 마약밀매와 같은 범죄활동들이 포함된다.
지하경제는 통상적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합법, 불법적인 행위 가운데 국민총생산(GDP)의 공식적인 계정상에 나타나지 않는 경제활동들을 통틀어 지칭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도성장 과정에서 기업들의 만성적인 자금난과 불완전한 제도금융시장의 영향으로 대표적인 지하경제의 하나인 사채금융시장이 크게 발달하였다.
1972년 8·3 조치로 신고된 사채이용 금액은 3,400억원에 달하여 전체 은행여신의 30%에 가까운 수치였다. 1994년에 갤럽이 조사한 사채규모는 당시 국민총생산의 11.2%인 33조원 규모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채금융 시장 외에도 우리나라 기업, 자영업자 들의 탈세행위, 정부의 부정부패와 관련한 뇌물수수, 범법행위 등이 우리사회 지하경제의 주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하경제 규모 58조 7천억원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를 현금수요함수 추정방법(currency demand approach)에 의하여 1970년대부터 2000년까지 추정하였다(Box기사 참조).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는 2000년 현재 59억원으로 추산되며 전체 GDP의 11.3%에 해당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반적인 축소 추세
지하경제 규모의 추이를 살펴보면 1970년대에는 전체 GDP의 무려 27.7%에 달하는 지하경제가 존재하였으나 1980년대에 GDP의 18.3%, 1990년대 들어서는 15.0%에 그치는 등 그 규모가 꾸준하게 줄어들고 있다. 이는 경제가 발전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한 나라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금융시장이 고도화되고 정부의 세수기반 확보와 감찰활동이 발전되면서 지하경제의 규모는 전반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반적인 추세와는 별도로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는 두 번의 큰 변동을 겪었다. 첫째는 1993년의 금융실명제의 실시로 인한 제도변화와 둘째, 1997년 발생한 외환위기, 그에 따른 기업, 금융 및 사회전반의 변화가 그 것이다.
금융실명제 초기 부작용
지하경제의 전반적인 하락 추세는 1993년 금융실명제의 실시 이후 일시적으로 반전된다. 1992년 지하경제 규모는 GDP의 14.2% 이였으나 금융실명제 실시 해인 1993년에는 18.4%로 크게 늘어났다. 이는 금융실명제가 실시되면서 제도금융시장에 차명이나 가명으로 등록되었던 자금들이 실명전환으로 인한 노출을 꺼리고 사채금융시장으로 이동한 데에 따른 결과로 해석된다. 1993년 이후 지하경제 규모는 다시 완만한 추세로 감소하였으나 외환위기 발생 이전인 1996년에도 15.5%를 기록, 금융실명제 이전인 1992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였다.
외환위기 이후 지하경제 규모 크게 줄어
이러한 지하경제 규모는 외환위기 이후 크게 축소되기 시작하였다. 금융실명제 이후 외환위기 이전까지(1993년~1997년) 지하경제 규모는 GDP 대비 평균 16.1%이었으나 외환위기 이후 1998년~2000년까지 지하경제 규모는 GDP 대비 평균 12.0%로 4.1%P 하락하였다. 이는 2000년 경상 GDP 기준으로 약 16조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금융실명제의 실시 이후에도 지하경제 규모가 쉽사리 축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환위기는 우리나라 경제를 투명화시키는 새로운 전기가 되었다. 외환위기의 발생과 그에 따른 IMF와의 협약, 신정부 출범 등으로 우리 경제는 기업과 금융기관의 투명성 제고에 대한 요구가 거세어졌다. 여기에 정부의 재정이 크게 악화됨에 따라 국세청의 세수입 확대 노력과 탈세자에 대한 적발이 강화되었고, 또한 금융기법의 발달과 정부의 적극적인 육성 정책으로 신용카드 시장이 폭발적으로 발달하면서 세수기반이 획기적으로 늘어나게 된 것이다.
정부의 기업, 금융기관 투명화 노력
정부는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대외신인도 회복을 위하여 기업, 금융기관, 정부부문의 구조조정을 통한 사회 전반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30대 기업집단의 결합재무제표 작성을 의무화하고 전자공시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공시제도를 강화함으로써 내부거래를 통한 손익조절이나 기업자금의 변칙유출 등을 막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을 뿐만 아니라 소액주주 권한 강화나 사외이사 도입 및 외부감사제도를 강화하여 기업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또한 금융시장 건전화를 위하여 정부의 간섭 배제와 여신결정 독립을 목적으로 한 은행법을 개정하였고 새로운 자산건전성 분류기준(FLC)을 도입하였으며 금융기관 감독기능의 강화를 위하여 독립적인 금융감독원이 출범되었다. 여기에 정부부문의 개혁을 통하여 2000년 말 현재 행정규제 16,280건 중 5,933건을 폐지, 2,981건을 개선하는 등의 대폭적인 규제완화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기업, 금융기관, 정부 등 전반적인 사회의 투명성 제고를 위한 정부의 노력과 규제완화 정책은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를 줄이는 데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탈세 적발, 세수입 확대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재정적자를 축소시키기 위한 노력도 지하경제를 축소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재정은 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위한 대규모 재정지원과 경기둔화에 따른 세수축소로 인하여 1998년 GDP 대비 4.2%의 재정적자가 나는 등 크게 악화되었다. 이에 따라 재정 건전화를 위한 국세청의 세원 확보 노력과 탈세에 대한 감찰활동이 외환위기 이후 대폭 강화되었다. 국세청은 외환위기 이후 기업집단 경영의 투명화, 원천세 징수업무 개선, 세무조사 인력 확충 등의 노력을 강화하였다.
이에 따라 국세청의 탈세 적발 및 추징세액이 외환위기 이후 크게 증대되었는데, 탈세 적발 건수는 1997년 927건에서 1999년 3,855건으로 증가하였으며 추징세액도 1997년 686억에 불과하였으나 1999년 1,391억에 달하였다. 조세범칙조사에 따른 추징세액과 조세범 고발 실적도 크게 늘어 1997년 36억에 불과한 추징세액이 1999년에는 2,089억으로 5.7배 가량 늘었고 조세범 고발실적도 1997년 406명에서 2배 이상 증가한 887명에 이르렀다.
이러한 국세청의 세수입 확보 노력과 감찰활동 강화에 따라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2000년에 1970년대 이후 가장 높은 17.4%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1970~1996년 평균인 14.4%보다 3.0%p 상승한 수치이다. 이는 2000년 경상 GDP 기준으로 9조원 가량의 세수임이 늘어났음을 의미하며 2000년도 전체 세수입(경상기준) 89조 3천억원의 10.9%에 해당된다.
민간 신용카드 사용 급증
세수가 급격히 확대될 수 있었던 것은 신용카드 사용이 급증한 데에 있다. 신용카드 사용실적은 1997년 60조원에 불과하였으나 2000년 214조원으로 증대되었다. 이러한 신용카드 사용의 증가는 자영업자들의 소득기반을 그대로 노출시킴으로써 그 동안 소득을 축소 신고해 탈루세의 의혹을 받아 왔던 자영업자들에 대한 세수기반을 노출, 확대시키게 되었다.
신용카드 사용의 급증은 꾸준히 증가해오던 신용카드업의 발달과 더불어 정부가 실물거래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신용카드 시장 확대 정책을 편데 기인한다. 정부는 이를 위해 신용카드 사용실적에 대한 세액공제를 실시, 확대하고 신용카드 미가맹 사업자에 대한 세무조사를 강화하였다.
신용카드 가맹점 수는 99년과 2000년 30~40% 가까운 성장을 보인 것으로 나타나며, 이에 따라 자영업자들에 대한 과세기반이 크게 확충되고 자영업자들의 매출액 고의누락 등의 탈루세 활동이 크게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자영업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과세기반 노출은 결국 조세탈루를 목적으로 한 지하경제 활동이 크게 위축됨을 의미하며 향후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활동도 신용카드 시장의 성장과 함께 지속적으로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지하경제 규모 국제 비교
이처럼 지하경제의 규모가 크게 축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비교를 통하여 스위스, 미국, 오스트리아 등의 선진국에 비해서는 아직 지하경제의 규모가 큰 것으로 나타난다.
물론 개발도상국과의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것으로 나타난다.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에는 홍콩과 싱가폴 13%(1990~93년 평균), 동유럽의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체크 정도가 9~16%(1990~93년 평균)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을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보다 소득수준이 낮은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태국, 필리핀, 스리랑카)과 중남미 국가들(과테말라, 멕시코, 페루)은 지하경제 규모가 GDP 대비 50% 가까운 수치를 보여 지하경제 규모가 상당함을 나타낸다.
선진국 중에서도 일본,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국가들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을 보이며 그리스, 이태리, 스페인의 국가들이 우리나라 보다 지하경제의 GDP 대비 규모가 큰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 미국과 스위스, 오스트리아의 지하경제 규모(1996~97년 평균치)는 GDP 대비 10% 미만으로 같은 기간중의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1996~97년 평균치)인 14.0%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최근 지하경제 확대 조짐 우려
최근 사채금융시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보도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이는 1999년부터 카드 발급과 사용이 급증하면서 개인들의 무절제한 카드 사용으로 과도한 부채를 지면서 손쉽게 대출 받을 수 있는 사채금융시장이 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지속적인 제도 금융시장의 경색현상으로 기업들의 사채시장 이용이 증대된 것도 하나의 원인으로 보인다.
지하경제는 조세탈루를 목적으로 한 소득 은닉 행위나 사채금융시장이 주를 이루고 있고 비자금 조성과 비리, 범죄행위와도 연관되어 있다. 이는 선진화되고 건전한 경제성장에 저해가 될 뿐만 아니라 정부의 세수기반의 약화를 초래하는 등 그 부작용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지하경제의 감축을 위하여 지속적인 기업과 금융기관의 투명성 제고를 강화하고 자영업자들의 과세기반 노출을 확대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정부 규제의 완화를 앞으로도 적극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나아가 기업과 금융기관 구조조정의 신속한 마무리를 통하여 제도권과 금융시장을 조속히 건전화하는 것도 지하경제 축소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