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 LG전자는 소니 닮은 ‘쌍둥이’?

전자 왕국 소니의 신화가 무너지고 있다. 혁신적인   제품 ‘워크맨’과 ‘트리니트론 TV’ 그리고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로 세계를 제패했던 소니가 이름값을 못하며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일본의 주간지 ‘동양경제’는 지난 2월25일 ‘소니 해   체의 날(ソニー解体の日)’이란 제목의 특집기사를 통해 “소니가 최악의 적자를 기록하며 침몰하는 것이 아니라 해체되어 가는 극단적인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며 우려했다.

소니는 4년 연속적자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TV 사업부문은 8년 연속적자에 허덕이고 있기 때문이다. 주력사업인 TV사업의 누적적자는 7138억 엔(10조2890억 원)으로 회사 전체 적자 8560억 엔(12조3387억 원)의 83.4%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실적 부진에 따라 신용평가 기관인 무디스는 올해 1월 신용등급을 Baa1로 내린데 이어 이달 6일 신용등급 강등을 경고하고 나서 투기 등급까지 추락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그런데 소니의 심각한 모습을 LG전자가 닮아 가는 것 같아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핵심사업의 부진이 회사의 발목을 잡고 있으며 사업의 전환점마다 시장과 동떨어진 의사결정을 하는 것도 판박이다. 또한 경영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제품 및 마케팅 전략마저 일치하고 있어 섬뜩하다.

■ 주력사업 부진에 추락하는 LG와 소니

LG전자의 매출액(연결기준)은 2008년 말 63조2804억원(56억 달러)을 정점으로 2011년 말에는 54조2566억원(48억 달러)으로 하락하였다. 소니의 매출액(소비자 가전부문)도 2008년 3조2049억엔(47억 달러)으로 고점을 찍은 후 점차 내리막길을 걸어 2011년 말에는 2조1284억엔(27억 달러)까지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는 206조820억 원(1825억 달러)에서 33.1% 신장된 274조3186억 원(2429억 달러)의 매출을 달성해 이들과는 대조적이다.

이러한 부진은 주력 사업의 시장 점유율 하락과 무관치 않다. 특히 LG는 휴대폰에서, 소니는 TV 사업에서 존재감을 상실해 가고 있다.

LG전자의 2009년 세계 휴대폰 시장 점유율은 10.7%로 3위였으나 올해 1분기에는 3.5%에 그쳐 신생 중국기업 ZTE의 4.2%에 이어 5위로 주저앉았다.

소니는 2006년 미국 디지털 TV 시장점유율 17.2%로 2위를 차지했으나 올해 1분기 말에는 7.4%로 5위로 밀려났다.

LG전자와 소니는 최근 들어 시장을 선도한 히트제품이 하나도 없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LG전자는 2008년 10월 출시된 쿠키폰 이후로, 소니는 2007년 플레이스테이션3을 끝으로  히트제품은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회사 브랜드 가치도 동반추락하고 있다. 세계적인 가치 평가기관 ‘인터브랜드’에 따르면
LG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2006년 94위였으나 2008년 100위권 밖으로 밀려나 아직까지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소니도 2008년 25위에서 2011년 35위로 브랜드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이에 대해 LG전자 관계자는 “별일 아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인터브랜드’가 평가한 브랜드가치가 회사의 장래 수익력을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가볍게 볼일은 아니라는계 업계 전문가의 의견이다.

주가는 회사의 현재와 미래가치를 반영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최근 1년간 LG전자와 소니의 주가 움직임도 비슷한 모습이다.

LG전자는  최고가 12만1200원의 반토막에 불과한 6만7100원을 기록했다. 소니도 929엔으로 32년 만에 최저가를 보이며 최고가 1만6950엔의 20분의1로 하락했다.

■ 시장을 못 따라가는 느린 의사결정과 소비자 반응에 둔감
 
LG전자와 소니의 의사결정과정을 보아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우선, TV 시장에서 두 회사는 시장의 흐름에 뒤처진 의사결정으로 고전하고 있다. LG전자는 TV의 스마트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음에도 스마트 TV와 관련된 환경구축에 한 발 늦어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장조사기관 ‘디스플레이서치’에 의하면 지난 1분기 세계 최대 시장인 유럽과 중국에서 판매된 TV중 스마트 TV의 비중이 각각 36%와 32%를 차지했고, 세계 평균이 29%를 차지할 정도로 수요가 스마트 TV 쪽으로 급속히 쏠리고 있다.

그런데 LG전자는 전체 TV 판매량의 11%만을 스마트 TV로 판매하는데 그쳐 고전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디스플레이 서치’는 2013년에는 스마트 TV 비중이 41%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스트라티지 애널리틱스(SA)’도 2016년에는 스마트 TV가 80%를 점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도 LG전자가 TV 시장에서 계속 고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소니도 평판(PDP, LCD, LED) TV를 삼성보다 먼저 개발했으나 투자결정 지연으로 출시를 못해 추월당했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도 이미 2007년에 11인치 급을 시장에 내 놓기는 했지만 큰 화면으로 갈아타는 데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사이 삼성과 LG가 먼저 55인치 급을 개발하는 바람에 뒤처지게 되었다.

스마트폰 부문에서도 LG전자와 소니는 비슷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급속하게 수요가 바뀌던 때 대부분의 회사들은 안드로이드용 스마트폰 개발에 주력했다. 

그러나 LG전자와 소니(에릭슨)는 MS의 윈도용 스마트폰 개발에 집중했다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패배한 다음 안드로이드 진영에 합류했다.

소비자 불만에 대처하는 두 회사의 고객응대가 안이한 것도 닮은꼴이다. 대부분의 고객 불만에 대해 ‘그럴 수 있는 일’이라거나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하다가 대규모 손실을 입거나 보상을 해 주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LG전자는 호주에서 에어컨 불량과 관련하여 미적대다가 300만 달러의 보상금을 물었으며 냉장고의 에너지 등급을 잘 못 표시해 1인당 331달러씩(10년간 전기료 차액) 구매자 전원에게 보상해야 했다.

미국에서는 냉장고 및 제습기 화재사고에 미온적으로 대응해 대대적 리콜과 거액의 배상금을 지급해야 했다.

소니도 사소한 문제로 시작된 노트북 배터리 폭발 사고에 대해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다가 2003년8월에서 2006년2월까지 960만개를 리콜 해 510억 엔의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또 2009년 하반기 미국의 죠지 핫츠에 의해 시작된 PS3 해킹은 사건을 얕보다가 1억 명 이상의 이용자 고객정보유출로 1632억 엔(20억8천만 달러)의 손실을 봤다.

■ 위기 탈출 전략도 베낀 것처럼 흡사

LG전자의 구본준 부회장은 취임 직후 “경쟁력의 핵심은 품질과 원가경쟁력”이라며 마케팅보다 생산과 연구개발을 중시하여 전임 경영자의 마케팅과 관리중심의 경영과 차별화를 이루고자 했다.

그러나 지난 7월 ‘글로벌 경영 확대회의’에서 “불황이라도 마케팅을 강화해 건전한 매출을 늘리자”고 함으로써 결국 마케팅을 강화하는 쪽으로 회귀한 느낌이다. 또한 판매비와 복리후생비 등을 30% 이상 삭감하는 조치도 단행해 내핍경영으로 위기를 통과한다는 정책이다.

소니도 스트링거의 뒤를 이어 구원투수로 나선 히라이 카즈오가 지난 4월 취임식에서 주요 임원들의 급여를 삭감하고 1만 명에 달하는 직원의 감원을 통해 회사를 정상화하겠다고 선언해 LG전자와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두 회사가 스마트폰에 사활을 거는 제품   전략도 동일하다. LG의 구본준 부회장은 스마트폰 부문육성을 위해 일명 ‘회장님 폰’ 개발에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

 히라이 카즈호회장도 취임 기자회견에서 스마트폰 부문을 소니 회생의 뿌리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세계시장에서 LG와 소니의 스마트폰은 시장 점유율이 미미해 아직 통계를 뽑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이다.
 
LG전자와 소니는 해외시장에서의 가격전략 또한 비슷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선진시장에서 프리미엄 전략을 추구하고 있지만 시장에선 어중간한 가격에 팔리고 있다.

46~47인치 TV를 보면 미국에서 같은 사양과 기능을 가진 제품을 기준으로 LG는 평균 1003달러, 소니는 평균 1062달러로 비슷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두 회사는 미국 시장에서 단 50달러 가격차이로 서로 경쟁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프리미엄 제품의 이미지를 달고 평균 1560달러에 팔리는 것과는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두 회사가 역점을 두고 개척할 해외 시장도 겹친다. LG는 이미 인도와 브라질 시장을 성장의 중심으로 삼고 있다.

소니의 새로운 CEO로 취임한 히라이 카즈오도 이머징 마켓, 특히 인도와 중남미 시장을 목표로 하는 지역전략을 발표했다. 그러나 인도와 남미 시장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삼성과 힘겨운 경쟁을 벌여야할 처지다.

느린 의사결정과 안이한 소비자 인식, 그리고 실패에 대한 부족한 책임의식 등은 위기에 처한 기업들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LG전자와 소니도 언제부터인가 이와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LG전자와 소니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 LG전자는 위기의 초기에 진입한 반면 소니는 심각한 수준이라는 차이 정도다.

증권계 애널리스트는 "그나마 이 단계에서 변화를 추구한 게 다행"이라며 ‘오너 경영’이라는 특단의 카드를 꺼낸 것에 기대감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