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인연

“용근아, 시골에서 알아주는 부잣집 여식이란다. 한번 만나보고, 웬만하면 식을 올리거라.”

아버지는 사진 한 장을 건네주며 이제 나이도 찼으니 결혼을 하라고 재촉했다. 나는 당시 6급 세무공무원이었기 때문에 신랑감으로 제법 인기가 있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여성과는 결혼할 생각이 없습니더.”

“그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고집을 피우는 것이냐. 인물 반반하고, 집안이 좋으면 그만인 것을······.”

아버지와 나는 결혼 문제로 늘 부딪쳤다. 하지만 신앙을 가진 여성과 결혼을 하고 말겠다는 내 고집을 아버지도 쉽게 꺾지는 못했다.

“신앙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더.

때문에 교회를 다니지 않는 여자라면 곤란합니더. 부부는 무엇보다 마음이 맞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더.

신앙이 맞지 않는 여성이라면 저는 양귀비가 온다고 하더라도 싫습니더.”

그리하여 아버지와 나는 많이 다투었고 갈등도 많았다. 내 지나온 삶에서 이 시기가 꽤나 괴로운 시절이기도 했다.

그런 내게 꿈에도 그리던 여성이 나타났다.

갓 결혼한 여동생 현숙이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 위해 종로에 있는 영어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여동생 현숙이가 학원에서 알게 된 친구라며 한 자매를 데리고 왔다. 바로 그녀가 지금 내 곁에 있는 아내 유영혜 권사다.

그때 나는 국세청 본청에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불이 붙은 부동산투기업무를 담당하던 때라 오로지 일과 씨름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창나이인 28살 미모의 재원이었다.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외모에다가 귀여운 경상도 사투리를 썼는데, 당시 내 눈에 그 모습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었다. 더군다나 고향도 같은 지역이었다.

내 여동생을 부추겨 그녀에 대해 좀 더 알아보라고 재촉했다.

며칠 후 동생은 그녀가 1남 6녀 중 맏딸이며,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가정법률상담소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귀띔해 주었다.

내 여동생은 그녀가 부친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으며, 집안 식구들을 잘 보살펴 줄 배우자를 찾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바로 이 여성이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녀야말로 하나님께서 내 배우자로 예비하신 인물임에 틀림없었다.

가족을 보살피는 그녀의 세심함은 물론, 나중에는 그 성실성까지 인정받아 변호사 사무실을 거쳐, 검찰청 사무관으로 특채돼 잠시 공직생활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강하게 끈 것은 그녀가 바로 크리스천이라는 점이었다.

나는 그 말을 전해들은 즉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그토록 원하던 배우자를 보내주심에 감사, 또 감사했다.

나는 그때부터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그리고 반드시 이 여성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매일 기도했다.

처음에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그녀도 내 끈질긴 구애에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또 한 번 기도의 응답을 받은 것이다.

우리는 모두의 축복 속에 1980년 2월 1일 명동 YWCA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나는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한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같은 신앙을 가진 여성을 아내로 맞이하게 해주셨으며, 시집을 와서도 홀로 된 시아버지를 극진히 모시고,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이 복잡하기만 했던 집안 대소사를 묵묵히 감내해 준 아내가 없었다면 아마도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그동안 아내가 내게 보여준 헌신과 사랑에 깊은 감사와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 어떤 말을 한다고 해도 그동안 당신이 내게 보여준 희생과 사랑은 갚을 길이 없소.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 또한 내 삶과 내 믿음의 존재 그 자체라오.

지금도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를 치고 다니는 나를 묵묵히 격려해주고, 도와주는 당신의 따뜻한 배려 때문에 내가 좀 더 안심하고 남을 돕고 사는 일에 매진할 수 있는 것 같소.

여보! 이제는 아이들도 다 커서 우리 곁을 떠났고 둘만의 시간을 가질 때도 되었지만,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이 일이 좋아요.

지금은 우리가 소외된 이웃을 돕고 있지만, 머지않아 그 수많은 이웃들이 우리 곁에서 우리의 외로움을 달래줄 것이오.

힘들겠지만 나를 조금만 더 믿고 따라와 주겠소? 삶이 다하는 날까지 서로 사랑하며 삽시다.

이 세상 그 어떤 귀한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여인 유영혜 권사, 여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