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몰아주기 과세가 현실화됨에 따라 대기업을 중심으로 과세를 피하기 위한 갖가지 방법들이 동원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합병을 통한 물타기 전략이다. 내부거래 비중이 낮은 기업을 합병하여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합병을 통해 내부거래 비중이 낮아지면 일감몰아주기 비난을 회피하는 효과도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당국은 대주주 소유회사 인수, 저가 외부수주, 일감 교환, 계열사 출자를 통한 지분비율 낮추기 등의 편법이 동원될 것으로 예상하고 대응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대주주 회사 인수를 통한 해소
지난해 11월 22일 대명엔터프라이즈는 자본금 3억원인 기안코퍼레이션을 주당 33만원씩 총 198억원에 인수, 내부거래를 종결지었다.
기안코퍼레이션은 대명그룹 박춘희 회장(故서홍송 회장의 부인)의 아들인 서준혁 대표가 70%, 딸인 서경선씨와 서지영씨가 각각 15%씩 지분 100%를 보유한 기업주 개인소유 회사다.
2008년 설립된 5년차의 신생기업으로 기업소모성자재(MRO) 거래, 유통사업, 외식사업, 여행알선업 등을 영업목적으로 하고 있다. 지난해는 전체매출 1468억원 가운데 68.9%인 1011억원이 내부 거래에 의한 매출이었다.
기안의 매출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되었던 계열사는 대명레저산업, 대명네트웍스, 대명건설, 대명홀딩스, U-솔비넷, 디엠에스 등으로 밝혀졌다. 대명엔터프라이즈가 이 회사를 인수함에 따라 오너 일가는 설립 4년 만에 투자금 3억원의 66배가 넘는 이익을 챙겼다.
‘일감 몰아주기’로 오너 일가 소유 회사에 그룹 계열사들이 물량을 몰아주어 기업 가치를 부풀린 다음 다시 계열사에게 되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긴 것이다. 결국 계열사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 계열사 간 합병을 통한 증여세 부담 낮추기
SK C&C는 지난달 이사회에서 SK엔카네트워크의 합병을 결정했다. 엔카네트워크는 2000년 설립된 자동차 매매, 대여, 관리업체이며 지난해 매출액은 5657억원를 기록했다.
SK엔카네트워크의 내부거래 비중은 1%도 되지 않는다. 반면 SK C&C는 지난해 매출액 1조5286억원 중 64.15%인 1조990억원이 내부거래이다.
두 회사의 합병이 이루어질 경우 내부거래 비중(지난해 기준)은 11.68% 포인트 가량 낮아져 52.47%가 된다. 이 경우 SK C&C의 증여세의제이익은 482억3500만원에서 317억3700백만원으로 164억9700만원이 감소한다.
이에 따라 최대주주인 최태원 회장(지분 38%)이 물게될 증여세는 87억500만원에서 55억7000만원으로 31억3500만원 절감할 수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 증여세를 37% 절감할 수있게 되는 셈이다.
■ 외부수주와 일감개방을 통한 완화
지난 3월27일 한전의 자회사인 한국남동발전은 발전용 유연탄 수송입찰에서 현대글로비스와 대보인터네셔널쉬핑 컨소시엄이 2015년부터 향후 10년에서 15년 동안 연간 800만 톤에서 1200만 톤의 유연탄 운송사업권을 획득했다고 발표했다.
현대글로비스는 계열사인 현대·기아차의 자동차, 현대제철의 철광석만을 실어 나르는 일만 해왔다. 그러다 지난해 최초로 현대오일뱅크와 10년간의 원유수송 장기운송 계약을 맺었지만 현대가의 일원으로 실질적인 외부 물량은 없었다.
지난해 현대글로비스의 매출액 9조2729억원 중 83.22%인 7조7166억원이 계열사를 통한 매출로 내부거래 비중이 특히 높다. 현대글로비스는 외부거래 비중을 높이는 전략을 적극 펴나간다는 계획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17일 광고·물류 분야에서 계열사 간 거래를 대폭 줄이고 중소기업에 직접 발주하거나 경쟁입찰로 전환하여 계열사 일감몰아주기 관행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광고 분야에서 1200억원, 물류에서 4800억원 등 총 6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물량으로 이를 통해 내부거래의 상당부분을 해소하고 동시에 중소기업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경쟁입찰 심사위원회를 주요 계열사에 설치하여 특정 기업에 물량이 몰리거나 불공정한 경쟁이 되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한성대교수)은 “ 일감몰아주기 규제와 관련해 현대자동차그룹이 스스로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 곳곳에 구멍 숭숭…감시 강화해야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일부 금융회사 및 대기업들이 서로 일감을 밀어주는 방식으로 지원하거나 오너 일가의 지분율을 낮추기 위해 계열회사를 동원, 대규모 증자를 통해 법망을 피해가는 행위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주요 그룹의 경우 재벌총수가 보유한 지분율은 2.23%에 불과하고 친족 보유지분까지 합산해도 4.47% 밖에 되지 않는다”며 “낮은 지분율로 인해 주가상승이나 배당수익 같은 정상적인 이익을 올리기 어렵게 되자 비상장 계열사를 만들어 이익을 빼돌려 왔다”며 일감몰아주기 과세는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함께 “일감 몰아주기 문제는 대부분 총수일가가 다수 지분을 보유하는 계열사에서 발생하며 지분을 보유하게 된 과정 자체가 정당하지 않은 것이 문제의 근원”이라며 “결국 그룹 소유구조의 개선과 제도적인 보완, 이에 따르는 적절한 법률적 규제가 수반되어야 해소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채이배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연구원은 “일감몰아주기 과세와 관련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기업이 있는 반면 일부 대기업의 경우에는 세금축소에만 몰두하고 있어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