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몰아주기 과세는 원래 대기업 집단의 대주주를 겨냥한 정책이었다. 그러나 관련법을 시행하는 시점에 와서 보니 소규모그룹 기업들이 세금폭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이법은 일부 대기업 및 지배주주들이 일감을 몰아줌으로써 부의 편법증여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그러한 행위가 사회적 용인한도를 넘었다는 비판에 따라 도입되어 올해 처음 적용된다.
그러나 당초 목표로 했던 대기업(상호출자제한 기업)들보다는 비용과 인력이 부족한 소규모그룹 기업들이 제도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 제도에 대한 인식부족…가산세까지 물어야 할 심각한 수준
‘죄는 청개구리가 짓고 벼락은 고목이 맞는다’는 속담이 있다. 일감몰아주기 과세가 이러한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신고가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소규모그룹에 속하는 기업들은 이 제도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전혀 대응을 못하고 있는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에 스마트폰 관련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 K전자 사장의 경우 대기업의 납품단가 인하압력을 피하기 위해 원재료 구매대행 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이 회사의 지분 50%를 보유하고 있지만 신고대상이 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상속·증여세법은 수혜법인의 최대주주뿐만 아니라 지분율(직접·간접) 3% 이상을 보유한 모든 주주가 증여세 신고를 하도록 하고 있다. 즉 가족들이 수혜법인의 지분을 보유하는 경우 가족들 중 3%가 넘는 지분을 보유한 사람도 각각 증여세 신고의무가 있다.
제도를 잘 알지 못하는 신고대상자가 7월까지 과실로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에는 20%의 가산세가, 고의로 신고를 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40%를 무신고 가산세를 부담해야 한다.
또한 신고를 했더라도 착오로 과소 신고를 했을 때는 10%, 고의로 신고를 누락한 때에는 산출세액의 40%를 과소신고 가산세로 납부해야 한다. 이외에도 세금을 납부하는 날까지 산출세액의 1만분의3에 해당하는 불성실납부가산세를 매일매일 더해서 납부해야 한다.
일부 기업주는 자신이 신고대상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그룹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으로 오인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중소기업관련 경제단체의 담당자조차 “재벌과 같은 상호출자제한기업들에게만 적용될 것으로 알고 있었다”면서 “중소기업이 더 많은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검토를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오해가 생긴 데는 경제민주화 논의가 공정거래법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상속증여세법에 의한 과세제도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 주 과세대상, 중견그룹 이하 기업이 될 가능성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과세는 대기업 그룹의 대주주가 일감몰아주기로 기업의 이익을 대주주 개인이 빼돌리거나 편법으로 상속세를 기피하는 것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도입되었다. 이 법의 시행 단계에 와서 보니 대기업그룹보다 중견이하 기업들에게 더 충격이 큰 불공평한 세금을 부담시킬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경기 남양만에 위치한 S정밀은 국내 자동차 회사에 서스팬션 관련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로 지난해 매출 552억원과 세후영업이익 7억8000만원을 올렸다.
이 회사는 생산성 향상에 힘써 이익률이 높아졌다. 그러자 완성차 업체로부터 이익률이 높다며 납품단가 인하압력에 시달렸다. 지배주주인 P사장은 인력파견회사(S인력, 지분40%)와 원재료 구매대행 회사(S상사, 지분40%)를 별도로 설립해 S정밀의 이익을 줄이는 방법을 택했다.
그가 소유한 수혜법인의 실적을 합산한 결과 약 22억3000만원의 세후영업이익(조정 후 감안사항 배제)을 올렸다. P사장은 가족 및 기타주주를 제외한 자신의 몫으로 5억7700만원의 과표와 1억1300만원의 증여세를 신고해야할 처지에 놓였다.
반면 세후 영업이익(세무조정이후의 영업이익)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재벌 계열사의 경우 내부거래 비중이 30%만 초과하지 않으면 단 한 푼의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대기업들은 제도 도입논의 시점부터 관련 입법과정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법이 제정된 후에도 지배주주 일가의 증여세 부담과 관련 사전검토와 입법 미비사항에 대한 유권해석을 얻는 등 적극 대응을 해왔다.
중소그룹 가운데서도 지방 소재 기업의 오너들이 정보부족과 지역의 세무관련 인프라 부족으로 낭패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 지방 소재 기업들은 제도를 알고 있다하더라도 마땅히 상담하거나 신고를 대행해줄만한 회계법인을 찾기가 쉽지 않다.
2013년 4월 현재 최소한의 관련업무능력을 보유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회계법인의 분포를 보면 전체 350개 중 수도권(서울·경기·인천) 227개, 경상권(경남북·부산·울산) 71개, 충청(충남북·대전) 30개, 전라(전남북·광주) 18, 강원 및 제주 각 2개로 대부분이 수도권과 경상권에 몰려있다.
결국 제도를 잘 모르거나 비용이 부족한 기업들만 과세의 대상이 되는 한계에 부딪힐 것으로 우려된다.
■ 중소기업에 대한 징벌적 과세 우려
현행 일감몰아주기 과세제도는 중소기업이라고 예외가 없다. 예를 들어 특수관계법인만이 고유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반드시 그 회사의 용역을 제공받아야 하는 경우에도 일감몰아주기에 해당되어 세금이 부과된다.
또한 판매처 또는 판매경로를 개척하기 위해 법인을 분리한 경우 등 특수관계기업과의 거래가 불가피함에도 일감몰아주기 과세를 피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한편 일감몰기주기 증여세가 오너 경영을 하는 재벌기업을 주 대상으로 하고 있는 까닭에 공정거래법상 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지 않는 기업에 대한 예외적용이 없다. 이로 인해 오히려 중견이하 기업에 불리하게 적용될 소지도 있다.
법무법인 율촌의 이민규 공인회계사는 “평등과세만을 강조해 일괄과세가 이루어짐으로써 불가피하게 발생되는 납세자의 ‘정당한 사유’를 전혀 고려하고 있지 못하다”면서 “대그룹 집단의 편법적인 부의 승계나 일감몰아주기 관행을 근절하자는 취지와는 다르게 주된 적용대상이 중견이하 기업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