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시작부터 금융권의 화두는 '위기(리스크) 관리'였습니다.
그만큼 한해를 시작하는 각오들이 비장했다고 볼 수가 있죠.
유럽의 재정위기와 미국의 재정절벽 우려, 신흥국의 성장 둔화 등으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는 순간에 '리스크 관리'는 선택이 아닌 기본 조건이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올해 연초 주요 금융지주사의 CEO들은 신년사를 통해 한결같이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신한금융의 한동우 회장은 '아문센의 성공방식'을 강조했는데 잠재적 위험 요인을 철저히 분석하면서 재무건전성을 튼튼히 해 예상치 못한 외부 충격에도 견뎌낼 수 있게 하자는 것이 요지였습니다.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은 '뿌리'와 '기초'를 강조했는데요. 겨울을 꼿꼿이 이겨낸다 하여 세한삼우(歲寒三友)라 불리는 대나무, 소나무, 매화나무가 엄동설한을 이겨낼 수 있는 까닭은 튼실한 '뿌리'에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였습니다.
또 어 전 회장은 "수익성이 아무리 좋더라도 리스크 관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한 순간의 실수로 그룹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하지만 어 전 회장도 그의 퇴임 이후 도쿄지점 부당대출과 리베이트 의혹,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 자금세탁 논란, 국민은행 본점 직원 국민주택채권 90억 횡령사건 등이 잇따라 터지며 전·현직 국민은행장이 사과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지는 미처 예측을 못한 것 같습니다.
리스크 관리는 광범위하게 이뤄지곤 하는데 내부는 시스템적으로 미리 방도를 세운다고 하지만 사방에서 터지는 대외적인 리스크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을 것입니다.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은 신년사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상시적인 위기상황에 대비해 리스크 관리를 한층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었습니다.
그는 "대내외 실물경제 침체에 따른 부실자산 급증에 대비해 전사 리스크 관리시스템(ERMS)을 비롯한 그룹차원의 통합 위기관리체계를 운영함으로써 다시는 과거와 같이 외부충격으로 인해 우리의 생존이 위협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다"고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금융은 STX 등 기업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고 올해 3분기 중 당기순이익 864억원에 그치는 등 최악의 실적을 보여 주었습니다.
3분기까지 누적기준 4447억원이라는 순이익도 신한금융이 3분기 순이익이 5232억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초라한 성적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우리금융 민영화가 지방은행, 증권, 은행계열로 분리매각이 진행되고 있는 점을 보면 이 전 회장이 추진한 솔로몬저축은행 인수, 우리카드 법인화 등 비은행부문 강화 추진은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신동규 전 농협금융 회장도 신년사에서 "위험관리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연초부터 여신심사 강화 및 부실채권 집중관리 등을 통해 비용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2분기 STX 등 기업부문의 리스크로 대손충당금이 늘어나며 399억원의 순손실이라는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 같은 실적 부진은 결국 신동규 회장에게도 짐이 되어 임기 1년을 마저 채우지 못하고 지주회장 바톤을 임종룡 회장에게 넘겨야 했습니다.
이처럼 1년이 흐른 뒤 되돌아보면 금융권은 사방에서 엄습해 오는 리스크에 우는 순간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리스크 때문에 모두 울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최근 주요 금융사의 인사 흐름을 보면 리스크 관리에 강점이 있는 인사들이 대거 발탁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7일 진행된 농협은행 인사에서는 현장 마케팅 우수자들이 본부 부장급 인사에 대거 이름을 올렸습니다.
김주하 신임 농협은행장은 이를 두고 "리스크 관리를 강화할 수 있는 현장 마케팅 능력 우수자 위주로 인사를 실시했다"고 밝혔습니다.
금융권 최초 여성 CEO가 된 권선주 신임 기업은행장도 리스크 관리 담당 부행장이었습니다.
금융위는 권 부행장의 발탁 이유에서 "권 내정자가 최초의 여성 은행장으로서 리스크 관리를 통한 은행의 건전성을 제고하면서 창조금융을 통한 실물경제의 활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저금리·저성장의 기조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이처럼 '리스크 관리'는 이제 모든 금융권의 선택과목이 아닌 필수선택 과목이 되었으며, 반드시 풀어야 할 핵심과제가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