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의 테두리에서 일을 해야 하는 국세공무원들은 납세자들의 억울한 사정을 들으면 함께 마음 아파한다. 그들도 사람인지라 납세자들의 절세를 도울 수 있다면 방법을 찾아 납세자들의 의사결정을 돕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세법은 강행규정이라 과세요건에 해당되면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사연과는 별개로, 과세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애로사항.
국세공무원을 자신들의 재산을 빼앗아가는 존재로만 인식하는 납세자, 그들도 대부분의 국세공무원들이 납세자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면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도울 방법을 찾아 동분서주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이 가진 지식을 통해 납세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서 행복함을 느끼는 국세공무원들은 납세자의 고맙다는 한마디가 욕설이나 폭언 등의 악성민원도 잊게 만든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이원만 노원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실 납세자보호실장(사진)은 "납세자의 딱한 사정을 들으면 방법을 찾아 세법의 테두리 내에서 돕고 싶다"며 "세법지식이 부족한 납세자를 위해 함께 고민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납세자를 만나 상담을 해보면 신용불량자가 되어 경제활동을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며 "남편의 자살로 한 순간 고액체납자가 되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못할 뻔한 납세자 문제를 해결해 줬는데 납세자가 진심으로 고마워해 국세공무원으로서 자부심과 보람을 느꼈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면서 "국세공무원들이 납세자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의사결정을 하기 전에 꼭 전문가와 사전상담을 통해 의사결정 하는 것"이라며 "과세요건에 해당되면 과세할 수밖에 없는데 거래가 끝난 후 오면 정황상 억울하다고 해도 도울 길이 없어 애로사항이 있다"고 당부했다.
22일 조세일보(www.joseilbo.com)는 이 실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악성민원에 대한 사례와 대책을 알아보고 친절민원 응대로 인한 보람있었던 일 등 국세공무원으로서의 그의 삶을 들어 보았다.
Q. 어느 부서에서 근무하는지, 무슨 일을 담당하는지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 저는 노원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실에서 납세자보호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이원만입니다. 납세자보호실은 납세자의 권익을 보호를 담당하는 부서로, 주요업무는 과세처분에 대한 이의신청 등 불복업무와 세금관련 고충민원 처리업무, 현장소통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또한 전화 및 방문 민원인의 세무상담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Q. 납세자보호담당관실의 업무 특성상 납세자와 부딪히는 일들이 자주 발생할 것 같은데, 힘든 점이 무엇입니까? 직접 겪었던 민원 중에 힘들었던 사례는 무엇입니까?
☞ 납세자의 고충상담과 과세처분에 대한 불복청구가 주요 업무이다 보니, 선행된 과세처분에 대한 불만으로 화가 많이 난 상태인 민원인들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과세처분의 적정여부에 대한 상담 과정에서 관련 증빙도 없이 무조건 세금을 깎아 달라고 언성을 높이거나 억지를 쓸 경우에 힘이 많이 듭니다.
그 중에서도 금년 3월에 발생했던 '신나 분신자살 소동'이 제일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습니다. 부동산을 증여 후 신고를 하지 않아 증여세 고지를 받은 민원인이 3월 중순경 1차 방문해 과세처분의 부당성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수집해 제출할 경우 적정한 세금을 낼 수 있다는 상담을 받고 귀가했습니다.
그 후 3월 말에 재차 방문해 상담 중에 직원이 "불복청구의 최종결정은 국세심사위원회 심의결과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제출된 증빙만으로는 과세처분의 부당성을 입증하기에는 부족할 수도 있다"고 안내하던 차에, 불만을 가진 민원인의 아버지가 미리 준비해 온 박카스 병의 뚜껑을 열고 상담직원에게 냄새를 맡아보라고 내밀었으며, 수상한 분위기를 느낀 상담직원은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했으나, 아버지가 병속에 들어 있는 신나를 본인의 상체에 뿌림과 동시 사무실 바닥에 뿌린 후, 한손에 라이터를 들고 분신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사무실 직원 6명이 분신하겠다고 위협하던 아버지와 대치하던 중, 직원 한명이 112에 신고했으며, 신고 후 5분 정도 경과된 시간에 경찰관 3명이 출동해, 라이터를 빼앗은 후 제압해 지구대로 연행했던 사건이었습니다.
본인의 요구를 폭력이나 협박으로 관철하려는 일부 민원인의 형태로 인해 참혹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습니다.
Q. 악성민원을 제기하는 납세자도 문제이지만 이를 국세공무원에게 온전히 짊어지게 하는 것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제도적으로 보완돼야 할 점은 없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 요즘 우리나라에서 '갑질' 논란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서비스를 제공받는 민원인들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무원에게 하는 '갑질'의 빈도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담 직원들에게 막말을 하거나, 본인이 잘못했음에도 일단 언성을 높이고 폭언을 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으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무원의 입장에서는 참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전화 상담시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 심각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익명 속에 숨어서 자행되는 전화상담시의 언어폭력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민원인이 세무서에 전화를 걸 때 본인의 주민등록번호 등을 입력하게 하고 상담내용이 저장됨을 안내하는 시스템이 구비된다면, 전화상담시 발생하는 언어폭력이 많이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Q. 평소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십니까?
☞ 개인차이가 있겠지만, 직원들끼리 퇴근 후 맥주한잔씩 하거나, 볼링, 탁구, 독서 등 본인의 취향에 맞는 여가 활동을 통해 해소하고 있습니다.
Q. 업무를 하며 보람을 느낀 일은 무엇입니까? 악성민원 말고도 가슴 따뜻했던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 남편이 운영하는 법인의 주주로 형식상 등록되었을 뿐 주주로서 권리행사를 한 사실이 없는 민원인이 사업부진으로 법인이 폐업하고 남편은 자살하는 상황에서 과점주주의 '제2차 납세의무자'에 해당하게 되어 고액의 과세처분을 받았습니다.
민원인이 납세자보호실에 방문하였기에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민원인의 설명에 신빙성이 있음을 판단하고, 국선세무사를 선임해 지정한 후, 국선세무사와 협조해 법인 설립 시부터의 관련서류를 수집한 결과, 형식상 주주일 뿐 실질적 주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해 제2차 납세의무자 지정을 취소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세법에 대한 무지로 인해 자칫하면 신용불량자가 되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던 민원인이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시할 때 납세자보호실 직원으로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조세일보 독자와 납세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 납세자와 세무상담을 할 때마다 느낀 점의 하나는 세금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한 후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무원의 입장에서는 세법의 테두리 내에서 업무를 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이후에는 고충이나 애로사항을 들어 줄 수 있는 사항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세금과 관련한 사항, 예를 들어 부동산을 양도하거나 증여할 경우 거래 이전에 전문가와 상담을 한 후 의사결정 하는 것이 절세의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획취재팀 : 이희정, 이현재, 류성철, 박지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