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실을 다룬 '귀향'(위)과 '동주'는 대중들의 입소문에 힘입어 저예산 영화의 돌풍을 이끌었다. <사진은 '귀향'·'동주' 스틸컷>
'저예산·재능기부'로 제작
손익분기점 넘고 흥행질주
몇 년 전 부터 극장가에는 천문학적 금액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영화에게 대다수의 스크린을 내주는 문화가 자리잡았다. 문화 시장 중 하나인 영화계에 자본 경제의 논리가 팽배해지면서 그간 저예산 영화는 설 자리를 잃어왔다.
영화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점점 심화되는 분위기 속에서 '귀향'과 '동주'는 놀라운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애환을 담은 '귀향'은 25억원의 제작비 가운데 절반가량인 12억원이 7만 500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충당됐다. 메가폰을 잡은 조정래 감독이 강일출 피해 할머니가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을 접하고 제작에 나선지 14년 만에 겨우 스크린에 걸렸다. 출연 배우들과 제작진의 재능 기부로 영화가 완성됐다는 점도 의미를 더했다.
'귀향'은 지난해 말 생존한 피해 할머니들의 후원시설인 나눔의 집에서 처음 시사회를 가진 뒤 전국 주요도시는 물론 미국 LA, 뉴욕 등에서도 관객을 초대했다. 반응은 폭발적. 국내외 시사회 현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관객들의 입소문에 힘입은 '귀향'은 개봉 전 배정됐던 스크린수가 50여개에 불과했다. 그러나 예매율 급증으로 극장은 태도를 바꿨고 500여개까지 스크린을 확보한 '귀향'은 개봉 4일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할리우드 작품인 '데드풀', '갓 오브 이집트', '주토피아' 등을 누르고 10여일 이상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굳건히 지킨 점도 놀라운 사실이다.
이준익 감독의 '동주'도 '귀향' 못지않은 행보를 보였다. 제작비는 고작 5억원. 할리우드 영화들과 같은 날 개봉한 탓에 370여개 스크린 확보에 그쳤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시인 윤동주와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청춘 시절을 담백하게 담아냈다는 평이 잇따라 나오면서 박스오피스 상위권으로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결국 개봉 12일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긴 것은 물론 20여일간 박스오피스 5위권에 머무는 기염을 토했다.
두 작품은 일제강점기 우리의 슬픈 역사를 다뤘다는 점 외에도 그 안에 담긴 '진실성'이 흥행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주인공의 화려함이 아닌 고통스러운 사회에 휘말린 인물을 사실적으로 조명한 부분이 관람객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요즘 청년들이 노력하라는 말과 '열정 페이' 등 사회적 현상에 지치고 부조리에 몸부림치는 현실과 일맥상통한다는 평가도 있다. 덕분에 '귀향'과 '동주'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청년들이 꼭 봐야하는 영화'로 인식됐다. CGV에 따르면 사회적 이슈의 바로미터라고 불리는 20대 여성들의 두 작품 관람 비율이 30%에 육박하기도 했다.
'귀향'과 '동주'가 보여준 저예산 영화의 저력은 블록버스터에만 집착해 관객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을 좁혀왔던 극장가에 경종을 울렸다. 이번 사례를 통해 앞으로 극장가에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지 지켜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