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 선진국 수준"…힘 빠지는 비과세 '명분'

정부의 주식양도차익 과세제도 도입 시도는 그 동안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번번이 시장논리와 정치바람에 밀려 실패했다. 특히 정부가 제도 도입을 언급하는 순간마다 주가가 크게 주저앉으면서 '공포' 분위기가 조성, 정부를 주춤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대내외 여건에 따라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주식시장의 속성을 감안하면 제도 도입과 관련한 '시기상조(時機尙早)론' 등이 득세, 제도 도입 의지를 꺾어놓을 가능성도 있다.

최근 유로존 사태 등 대내외 악재가 주식시장의 불안감을 더해주고 있기 때문에 제도 도입을 천명한 정부가 끝까지 '초심'을 잃지 않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의 우려와 달리 국내 주식시장의 '펀더멘탈(Fundamental)' 자체가 과세제도 도입에 따른 후폭풍에 붕괴될 만큼 빈약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충분히 이를 감내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체력은 선진국 수준에 올라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선진국이 채택하고 있는 전면적인 주식양도차익 과세제도 도입은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되는 과제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 주식양도차익 과세제도 도입, 지금이 적기? = 시장논리, 정치논리를 떠나 '공평과세' 원칙만 놓고 본다면, 주식양도차익 과세제도 도입은 필연이다. 과거 우리나라가 증권거래세 제도를 채택한 이유는 공평과세라는 조세원칙보다는 경제부흥을 우선했기 때문.

즉, 주식거래의 장애물들을 최대한 낮게 설정해 외국인 투자를 광범위하게 유치 몸집을 키우기 위한 목적이었다. 1986년 당시 시가총액 12조원에 불과했던 국내 유가증권시장은 푸른 눈의 투자자들이 가진 '돈'이 절실히 필요했다.

일반적으로 주식양도차익에 과세를 하게 되면 전반적인 투자수익률이 줄어 투자수요가 감소되기 때문에 양도차익에 대한 전면적인 과세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대만 등 아시아 신흥경제국들도 증권거래세 제도를 주테마로 채택한 것도 같은 맥락. 

국내 주식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직전인 2007년 7월 당시 시총 1000조원을 돌파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시총 규모가 반토막(577조원)이 났지만, 2009년 888조원, 2010년 1200조원, 2011년 1147조원 등 체력을 완벽하게 회복했다. 

우리나라 한해 국내총생산(GDP) 수준을 넘나드는 자금이 주식시장에서 돌고 도는 셈이다.

이에 따라 주식시장의 성숙도는 이미 검증된 것이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이제는 자금의 유입을 유도하기 위한 후진국형 과세제도를 버리고 주식시장 과세체계를 공평과세를 우선한, 선진국 형태로 정비할 시기가 됐다는 것이다.

홍범교 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2010년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산업화 초기 기업 자금조달원으로서 자본시장을 육성하기 위해 주식양도차익에 비과세했던 정책 목적은 이미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며 "2010년 기준 주가지수 선물시장 세계 6위, 옵션시장 규모 세계 1위인 우리나라에서 비과세를 계속 유지해야 될 명분은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 선진국 과세체계, 어떻게 설계되어 있나? = 주요 선진국들의 사례는 정부가 현재 고심하고 있는 양도차손 공제율 문제 등 제도의 성공적 도입을 위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실제로 현재 정부로부터 의뢰받은 연구용역을 수행 중인 연구진들은 해외사례를 비교 분석, 세부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는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양도과정에서 손실이 발생될 수 있는 부분을 고려해 기본 공제한도를 재설정(현행 250만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세연구원 보고서 등에 따르면 주식양도차익 과세제도를 운용 중인 선진국들은 다양한 세율과 공제한도를 마련해 두고 있다.

먼저 미국은 양도차익 규모에 따라 15∼39.6%의 세율로 다른 소득과 합쳐 종합과세를 하고 있으며, 투자 손실 시 기타소득에서 3000달러까지 자본이득을 공제해 주고 있다.

영국은 10∼40% 세율로 각각 분리과세를 시행하고 있고, 총자본이득에 대해 연간 약 1만 파운드를 비과세하고 있다. 특히 양도차손에 대해서는 무제한 이월공제가 가능한 것도 눈 여겨 볼 부분이다.

프랑스는 양도차익에 대해 29% 세율을 적용해 분리과세 하되, 양도차익 2만5000유로까지 비과세하고 있다. 독일은 주식 지분율 및 보유기간과 관계없이 자본이득의 50%에 대해 과세하고 양도손실에 대해선 공제가 허용되지 않는다.

증권거래세 체계에서 주식양도차익 과세제도로 성공적으로 안착한 대표적인 케이스로 평가받고 있는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주식양도차익에 대해 소득세 20%, 주민세 5%를 각각 분리과세하고 있으며, 양도차손을 양도차익에서 공제할 수 있고 상장주식 양도손실과 배당금 사이에도 손익통산을 허용하고 있다.

구체적인 공제한도와 세율 등은 각 국의 사정마다 제각각이지만, 눈에 띄는 점은 우리보다 먼저 제도를 도입한 대다수 선진국들이 이월공제 허용 및 비과세 한도 설정 등의 방식으로 주식 양도과정에서 발생되는 '손실'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 싸늘한 '반응'…지금 주식시장에서는? = 상당수 조세전문가들이 정부의 주식양도차익 과세제도 도입에 찬성표를 던지며 힘을 실어주고 있지만, 주식시장 관계자들은 여전히 부정적 시각을 거둬들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제도가 가져올 어마어마한 충격파를 우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4대강 사업에 쓴 재원을 메우기 위해 과세하려는 것 아니냐"는 형태의 정치적 음모론(?)까지 언급할 정도로 주식시장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주식시장의 한 관계자는 "현재 유럽재정위기가 심화되고 국내실물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제도 도입을 논하기는 다소 이른 측면이 크다"라며 "제도를 도입한다 하더라도 시행시기는 시장 안정화 추세를 보면서 늦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식투자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높은 투자수익률에 대한 기대감도 있지만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라며 "제도가 도입되면 엄청난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증권사들을 고사(枯死)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증권사 관계자는 "경제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주식거래 수수료를 내리는 등 증권사 수익창출원이 줄었다"며 "주식양도차익 과세제도는 증권업계를 굶겨 죽이는 일"이라고 말했다.

주식시장의 또 다른 관계자는 "투자수익이 높은 주식양도차익에 과세를 하는 관점이 아니라 부족한 정부재원을 메우기 위한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좀 더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라며 "시장에 줄 타격을 완화하는 방안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큰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획취재팀 : 김진영 정책팀장, 유엄식·장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