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환자 보험증권 왜 사모으나 했더니…

보험계약자는 계약을 해지해 해약환급금을 받을 수 있는 권리와 수익자를 지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보험계약자가 사망했을 때 수익자를 미리 지정해 놓은 경우 가끔 곤란한 지경에 처하기도 한다. 자녀가 없는 상태에서 이혼하거나 배우자가 사망한 상황이면 사망 시 사망보험금을 물려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또 중대한 질병에 결려서 당장 치료비 등이 필요한데 사망보험금은 사후에 지급되기 때문에 계약자 입장에서 보험가입에 따른 이익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로 인해 몇몇 나라에서는 피보험자가 죽기 전에 보험계약을 제3자에게 팔 수 있는 생명보험 전매제도가 생겨났다. 

생명보험의 전매시장은 에이즈유행 초기인 1980년대에 처음으로 형성되었다. 당시 에이즈 진단을 받은 사람의 대부분은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배우자나 자녀가 없었다. 따라서 사망보험금을 물려줄 수 있는 가족이 없는데 반해 당장 지급해야 하는 의료비 문제가 시급했다. 당시 많은 에이즈환자가 자신들의 생명보험 증권을 팔아서 불어나는 의료비를 충당했다.

당시 에이즈 바이러스에 대한 의학계의 이해는 부족했다. 따라서 에이즈 환자들의 기대여명 또는 평균여명은 매우 짧았다. 투기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에게 이는 단기간 내에 커다란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로 보였다.

만약 1억원짜리 종신보험에 가입한 에이즈환자가 2년 안에 사망한다고 가정해 보자. 보험계약의 해약환급금이 4천만원이라면 보험계약자인 에이즈환자로부터 이보다 약간 많은 4천5백만원에 보험증권을 구입한 뒤 2년간 5백만원의 보험료를 납입하면 될 것이다. 이 보험계약을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돈은 모두 5천만원이 된다.

2년후 피보험자가 사망한다면 보험회사로부터 1억원의 보험금을 탈 수 있게 된다. 그동안 투입한 돈의 이자비용을 감안하지 않는다면 2년만에 100%의 수익을 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계산은 크게 빗나갔다. 의학의 발달로 칵테일 요법 등 에이즈 치료법이 속속 개발되어 에이즈 환자들의 수명이 계속 늘어났다. 당연히 여기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큰 손해를 보았다.

생명보험 전매시장은 그후 한동안 침체기를 겪다 2000년대에 들어 유동성 위기에 처한 노인들이 많아짐에 따라 활기를 되찾았다. 그러나 손해를 보게 된 보험사의 반발로 순탄치만은 않았다. 보험계약이 당초 예상보다 오래 유지되어 보험회사의 수익률이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여기에 모럴해저드라 불리는 도덕적 위험도 더해졌다. 피보험이익이 없는 제3자가 수익자가 되자 고의로 피보험자를 해치는 보험사기가 우려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문제점을 보완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가입 후 5년이 경과한 보험계약만을 전매대상으로 하거나 전매대상 보험종류를 제한하기도 하였다.  
   
생명보험의 전매도 투자의 대상이 되므로 투자분석이 필수다. 보험계약 매수자는 피보험자의 나이, 성별, 의료기록, 건강상태, 가족력, 생활습관 등을 고려하여 피보험자가 앞으로 얼마나 살지를 추산한 다음 투자분석을 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산출된 기대여명이 길면 길수록 사망보험금을 지급받기 위하여 더 많은 보험료를 납입해야 하고 사망보험금의 지급 시기도 늦어져 계약의 가치는 떨어지게 된다. 기대여명이 짧다면 그 반대가 된다.

전매가 이루어지면 매수자는 보험회사에 계약자 및 수익자 변경 등을 요청하여 법적 절차를 마무리한다. 이후 보험료를 납부하다다가 피보험자가 사망하면 보험금을 수령하여 투자금을 회수한다.    

생명보험 전매 투자자들은 경제상황의 변화에 관계없이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한 조사결과에 위하면 7-8년간 보유한 생명보험 증권의 경우 연 9~13%의 추정 수익률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들어 미국에서는 불경기 속에 유동성 위험에 처해 생명보험 증권을 전매하는 노인들이 늘어 전매가가 많이 하락하여 수익률이 더 높아졌다.

결국 보험계약 전매제도는 제3자인 피보험자의 건강상태를 파악하여 잔여수명을 계산한 다음 수지분석을 통해 계약을 인수하여 투자수익을 챙기는 비정한 미국식 자본주의의 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일각에서 이 제도의 국내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데 우리 국민정서상 우리나라가 이러한 제도를 수용할 수 있을는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