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보험회사에 나병환자가 지팡이를 들고 나타나 객장을 휘젓는 바람에 여직원들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는 소동을 겪었다.
보험가입자가 보험회사에 알려야 할 사항을 작성할 때 설계사가 나병환자라는 사실을 알리지 못하게 하여 보장을 받지 못하게 된데 대해 격분한 것이었다.
보험회사는 백배사죄하며 이미 납입한 보험료를 돌려주는 선에서 고객을 돌려보낼 수 있었다. 담당과장이 선물을 한 아름 안겨주면서 허리가 부러지도록 공손하게 인사를 한 것은 물론이다.
보험회사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부실판매 책임을 물어 관련 설계사를 해촉했다.
안도의 한숨도 잠시였다. 며칠 만에 그 고객이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또다시 여직원들은 공황상태에 빠졌고 업무는 마비되었다.
그런데 그 사람의 표정이 처음 왔을 때 분기탱천한 것과는 사뭇 달랐다. 어쩐지 의기소침해 있는 것이었다.
담당과장이 조심스레 그에게 다가갔다.
“저번에 말씀하신 것 다 들어주었잖아요. 근데 어떤 일로 또 오셨어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기~ 내 계약을 모집했던 그 설계사 모가지를 다시 붙여줄 수는 없을까요? 나 한번 살려주쇼. 내가 나병환자들만이 쓰는 끝내주는 무좀약 세 통을 드리리다”
담당과장은 그 사람이 왜 이렇게 비굴해졌나 의아해 하면서도 궁금한 나머지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고객님, 징계위원회에서 한번 해촉된 설계사를 다시 위촉하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왜 그 설계사를 다시 써 달라고 하시는지요?”
“내가 닭과 돼지를 기르고 있는데 그 설계사가 날마다 찾아와 자기 모가지 다시 붙여 놓으라며 가축들을 해코지 하고 다니니 내가 살 수가 없소”
축 늘어진 어깨를 하고 돌아가는 그 고객이 안쓰러워 보였다. 나병환자 고객도 꼼짝 못할 정도로 대가 셌던 여장부 설계사가 참 대단해 보였다.
지금쯤 그 설계사는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는지 참 궁금하다.
[약력] 삼성생명 부장, AIG생명 부장, GE캐피탈코리아 이사, 에이스(뉴욕)생명 전무, 조세일보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