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음주사실을 시인하고 자비로 자동차를 수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가 뒤늦게 음주사실을 부인한다면 보험금을 탈 수 있을까? 음주사실을 시인한 것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음주운전을 했다는 증거가 남아 있지 않다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기업의 이사로 근무하는 최모씨는 오후 7시반경 회사 소유의 자동차를 운전하여 서울시 양천구 목동 경인고속도로 진입도로 부근의 5차선 도로의 5차로를 따라 운전하고 있었다.
음주상태였다. 전방주시의무 태만 등으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12미터 이상 나아간 후 17cm 높이의 보도턱까지 밀고 올라갔다. 가드레일을 뚫고 보도까지 진입하다보니 차량을 폐차해야 할 정도의 피해가 발생했다.
최씨는 70cc 크기의 맥주잔으로 막걸리 두 잔을 마셨을 뿐이며 약관에 혈중알콜농도가 0.05% 이상일 경우에만 음주운전에 해당하므로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는 이상 자기차량손해액 2277만원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보험회사는 음주운전으로 인하여 사고가 발생한 만큼 보험금지급사유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해당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맞섰다.
인천지방법원은 우선 최씨가 보험약관에서 정한 음주운전을 한 것인지의 여부를 살폈다. 약관에서는 ‘음주운전은 도로교통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한계치 이상으로 술을 마시고 운전하거나 도로교통법에 의한 음주측정 불응행위를 말한다’고 표기되어 있었다.
도로교통법은 ‘누구든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동차 등을 운전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금지되는 술에 취한 상태의 기준은 혈중알콜농도 0.05% 이상으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보험사는 견인기사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견인기사 전모씨는 사고 발생 후 1시간 반이나 지난 9시 경에야 사고장소를 벗어나 다른 장소에 있던 최씨를 발견했다고 증언했다.
견인기사는 최씨에게서 술냄새가 심하게 났기 때문에 음주운전 여부를 물었는데 처음에는 부인했다고 증언했다. 견인기사 전씨는 최씨에게 음주운전을 부인하려면 경찰서에 가서 음주운전여부를 측정해야 한다며 경찰서로 갈 것을 요구하자 그제서야 음주운전사실을 인정하였다.
전씨는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의 경우에 보험회사가 자기차량손해보험에 대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설명하고 음주운전확인서를 작성하도록 요구했다. 이에 최씨는 “자기차량손해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자비로 수리할 것이니 음주운전확인서를 작성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견인기사 전씨는 최씨가 정비소로 가는 도중 다시 음주운전을 부인하는 듯하자 경찰서로 가서 확인할 것을 재차 요청하였고 이에 최씨는 음주운전 사실을 다시 인정하였다고 증언했다.
법원은 비록 약관에서 음주운전기준을 혈줄알콜농도가 0.05%이상으로 정하고 있으나 최씨의 혈중알콜농도를 측정하지 못한 것은 그가 음주운전사실을 인정하고 자비로 자동차를 수리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최씨가 혈중알콜농도 0.05% 이상이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보험회사측에 자기차량손해보험금을 지급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결론지었다. 이에 따라 보험사는 보상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신의성실의 원칙은 이미 자기가 한 말이나 행위에 대하여 추후 이와 모순된 행위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세기본법에서도 신의성실원칙에 대한 명문규정을 두고 있다. 이 원칙에서 파생된 금반언의 원칙도 비슷한 개념이다.
만약 애매하지 않고 명백하게 의사표현을 하고 그것이 자의적이고 무조건적이며 권한 있는 자에 의한 것이어서 상대방이 선의의 신뢰를 가졌다면 추후에 의사를 번복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준 판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