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개그콘서트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정여사'가 최근 들어 금융권에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로 불리는 이들은 가입한 금융 상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막무가내로 환불을 요구하거나,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한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고수익을 노리고 복잡한 파생 상품에 투자한 뒤 손실을 입자, 불완전 판매를 빌미로 손해배상을 요구했다가 큰코 다친 A씨의 사연은 이렇습니다.
그는 단골로 찾아가는 증권사 영업점에 방문, 1년 동안 투자할 펀드 상품의 추천을 요청했습니다.
증권사 직원은 다음 달 판매 예정인 파생 상품에 대해 안내한 뒤 한 달 후에 가입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A씨는 상품 청약서와 투자 설명서, 설명 확인서 등을 작성하고, 증권사 직원이 추천한 대로 가입금 1000만원을 MMF(money market fund)에 입금했습니다.
단기 투자신탁인 MMF에 맡긴 1000만원은 한 달 후 이자가 발생하며 1000만9493원으로 불어났고, 증권사 직원은 이 돈을 A씨의 새 펀드 계좌로 옮겼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화 통화를 통해 한차례 더 확인이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때부터였습니다. 펀드 수익률이 계속해서 하락하자 A씨는 불안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2년 만에 환매를 신청한 것입니다.
당초 펀드의 투자 기간은 3년으로 설정돼 있었고, 조기 상환 수수료가 부과되는 구조였습니다.
A씨 손에 돌아온 돈은 겨우 780만5574원. 원금의 78%에 불과한 금액이었지요.
A씨는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에 분쟁 조정을 신청, "1년 안에 운용되는 상품을 원한다고 했는데 증권사 직원이 3년 만기의 상품을 권유했으니 손실액 220만3319원을 배상해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증권사 측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그 이유는 "A씨에게 수익 구조와 원금 손실의 가능성에 대해 설명했고 부당하게 가입을 권유한 사실이 없기 때문에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사건은 증권사에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습니다.
판매 개시 당일 증권사 직원은 몇몇 공란(空欄)을 직접 기재하기도 했는데요. A씨가 영업점에 방문한 당시에는 상품 명칭 등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관계로 증권사 직원이 빈칸을 임의로 기재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청약서 일부에 다른 사람의 필체로 기재된 것은 A씨의 의사와 무관하게 가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지만 '증권사가 A씨의 손실액을 물어 줄 필요는 없다'며 분쟁 조정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이 판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A씨와 증권사 직원 사이의 통화 내용에 대한 녹취였습니다.
이 통화 기록에 따르면 A씨는 "원금 손실의 가능성이 있느냐"고 물었고 이에 대해 직원은 "만에 하나 빠지게 되더라도 끝나는 게 아니라 6개월마다 기회를 드린다. 3년 안에 돈이 필요한 경우만 아니면 괜찮다"고 답했습니다.
따라서 A씨는 이 상품이 3년 만기인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가입 이후 총 3회에 걸쳐 자산 운용 보고서를 수령하기도 했습니다.
A씨는 억울하지만 분쟁 조정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펀드 손실과 관련한 분쟁 조정 신청은 종종 발생하는데요. 모든 판결이 가입자에게 불리한 결정만 내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증권사 직원이 펀드 운용 방법이나 계획 등에 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서 고수익이라는 장점만 강조한 경우 이는 가입자 보호 의무를 게을리한 것으로 불법행위에 해당됩니다.(대법원 2003.7.11.선고 2001다11802 판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