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전용차량도 로고 붙여야지?" = 업무용 자동차 인정기준을 강화하는 제도개편이 추진될 예정인 가운데, 기업들은 불편한 속내를 표출하고 있다. 업무용 자동차로 인정받으려면 회사로고 부착과 운행일지 작성을 해야 한다. 회사로고의 경우에는 일정 규격 이상이어야 인정이 돼 기업들의 불만이 상당하다. 일각에서는 대통령과 장관들 자동차도 로고를 붙여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정부가 '세금블랙홀'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법인 업무용 승용차 비용인정 기준을 강화하는 방향의 세법개정을 추진하기로 한 가운데 안팎에서는 정부의 조치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비판의 핵심은 제도의 틀 자체가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에서 급조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가장 문제시 됐던, 억대의 고가 수입차량을 법인 업무용으로 구매해 사적으로 운용하면서 발생하는 비용을 소득에서 공제, 엉뚱한 세금혜택을 받고 있는 부분에 대한 개선책은 빠져 있어 실효성은 물론, 조세형평에도 맞지 않는 제도개편이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 "제도개편 내용 미흡하다, 보완 필요" = 이 문제가 불거진 것은 고소득 자영사업자 및 일부 대중소기업 오너들이 수 억원을 호가하는 고급차량을 업무용 차량으로 등록한 뒤 사실상 사적으로 사용하면서 운용 비용은 회사 경비로 처리 법인세(또는 소득세) 감면혜택을 타먹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된 1억원 이상 수입차량 총 1만4976대 가운데 83% 가량이 '업무용'으로 팔렸을 정도다.
시민단체 및 정치권이 이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한 것은 '사회통념'이다.
즉, 일정액 이상의 고급차량은 아무리 업무용으로 사용했다손 치더라도 비용인정 대상에서 제외하고 일반적인 경우에도 업무용으로 활용한 부분에서 발생한 비용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비용처리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기업 관계자들도 일부 부유층의 일탈에 대한 제대로 된 규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경비처리 대상 차량의 상한선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규제를 위한 세법개정안을 내놓기는 했지만 '통상마찰'을 이유로 상한선 설정을 생략했다.
기본적으로 임직원 전용 자동차 보험에 가입하면 업무용 승용차 구입 및 유지비의 50%를 경비처리 허용하고, 나머지 50%는 운행일지 등 적법한 증빙을 갖춘 경우에 허용한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조세전문가들은 "상한선을 설정하지 않으면서 차량 가격이 얼마인지 상관없이 기본 50%는 경비처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라며 "문제의 핵심을 완전히 비껴나간 세법개정이 아닐 수 없다. 기업의 합리적 경영환경 조성과 국고누수 방지가 목적인데, 엉뚱한 통상마찰을 이유로 상한선을 설정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세형평에도 맞지 않는 개편안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3억원대 차량을 업무용으로 구입해 임직원 보험에만 가입한 뒤 100% 개인적으로 사용해 4억원의 비용(구입비+운용비)이 발생했다면 무조건 2억원은 합법적으로 경비인정 된다.
2000만원대 차량의 경우라면 경비인정 범위가 고작 1500만원(구입비 2000만원+운용비 1000만원)에 불과, 소득이 높을수록 세부담이 높아지는 공평과세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조세전문가는 "고가의 차량일수록 기름값 등 유지비가 상대적으로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세금혜택의 절대규모가 크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힘든 세법개정안이며 오히려 2~3000만원대 업무용 차량을 운용하는 사업자들의 세부담만 늘리는 결과가 빚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 업무도 바쁜데 '운행일지' 쓰라고요? =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이 뿐만이 아니다. 특히 기업들은 추가 비용인정을 위해 업무용 차량에 회사 로고를 부착하고, 업무용 차량 운행자가 일일이 '운행일지'를 써서 제출하라는 정부의 방침에 혀를 차고 있다.
보험가입 요건을 기본으로 충족하고 로고를 부착하면 100% 비용인정이 가능하며 로고를 부착하지 않을 경우 운행일지를 작성해 제출하면 비용의 80%만 인정해 준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
기업 입장에서는 로고를 붙이던지, 운행일지를 써야 한다. 로고의 경우 탈부착이 가능한 것은 인정되지 않고, 로고의 크기 또한 국세청장이 정한 일정 규격 이상이어야 한다. 보일듯 말듯한 회사 로고는 아예 인정이 되지 않는다.
기업들의 불만은 로고 부착이라는 현실을 외면한 지극히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 가미됐다는 부분에 집중되고 있다. 기업에서 공용으로 사용하는 차량의 경우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임원에게 지급되는 차량의 경우, 회사 로고를 부착하고 타고 다니라고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기업 회장이 타는 차량도 업무용으로 인정받으려면 회사 로고를 큼지막하게 붙여야 하는데 과연 이를 받아들일 임원들이 몇이나 있겠냐는 것이 기업인들의 주장이다.
기업들은 차량 운행일지를 쓰는 방법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라고 입을 모은다.
고연봉을 받으며 시간을 쪼개 경영활동에 참여하는 고급 인력들이 한가하게(?) 차량 운행일지를 쓰라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업무차 차량을 이용했는지 개인 용무로 차량을 사용했는지 구분하는 것 자체가 애매하다는 것이다.
기업의 한 관계자는 "요즘 대기업에서는 업무용 차량을 철저하게 관리한다. 특히 임원 가족에게 법인 차량을 그냥 제공하는 일은 없다"며 "소위 사모님이 회사 차량을 이용하는 경우는 거의 중소기업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왜 대기업까지 제재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회사에서 컴퓨터를 사용할 때 업무로 사용했는지 개인적으로 검색할 것이 있어서 사용했는지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지 않느냐"라며 "심지어 볼펜도 업무용으로 사용했는지 개인적으로 사용했는지 구분이 어려운 마당에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지극히 행정편의적으로 개정안을 만들었다. 나중에 세무조사가 나왔을 때 조사반원들이 이 애매한 부분을 문제삼는다면 그것 또한 기업입장에서는 골치거리가 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임원들에게 회사 로고가 붙은 차량을 타고다니거나 운행일지 써서 제출해 달라고 하면 누가 듣겠냐"라며 "외국의 사례를 참고했다고 하지만 기업의 현실과 국내의 정서를 감안하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