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FTA협정이 발효된 국가에 물품을 수출하면 상대국에서 특혜관세를 적용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상대국은 특혜관세를 적용받은 물품이 한국산이 맞는지에 대해 우리나라에 원산지 검증요청을 할 수 있는데, 이때 FTA협정에서 정하는 원산지기준 충족여부를 검증해 그 결과를 상대국에 회신해야 한다.
정해진 기한 내에 회신하지 못하거나 원산지기준 불충족으로 판정해 회신하는 경우 상대국에서의 관세특혜는 환수되고 결국 피해는 우리나라 수출업체가 고스란히 받게 된다.
본격적인 FTA시대, 원산지 검증에 대한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에 관세청은 한-EU 및 한-미 FTA가 발효됨에 따라 지난 2012년 4월 서울세관에 자유무역협정집행국을 신설, 국내 수출업체가 원할히 FTA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서울세관 자유무역협정집행국 자유무역협정2과에서 FTA 원산지검증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김대길 관세행정관(남, 51세 사진).
그는 "국내 수출업체로부터 '서울세관의 원산지검증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원산지 검증대응 시스템도 잘 정비해 지금은 충분히 검증대응 역량을 갖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치열했던 '원산지 검증', 서류에 묻혀 지낸 밤 = 2012년 10월 슬로바키아, 2013년 3월 체코와 독일로부터 국내 H업체에서 수출한 자동차 부품에 대해 3차에 걸친 원산지검증 요청이 왔다.
검증대상 품목수만 무려 4161개. 관련업체 수는 402개에 달했다.
당시 팀장으로 선정된 김대길 행정관은 한-EU FTA 초기 수출물품 원산지검증의 모범적인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은 채 검증에 착수했다.
하지만 H업체로부터 원산지 증빙서류가 제출 되었을 때 다시 한번 놀랐다는 김 행정관. 그는 서류가 많을 것을 예상하고 미리 몇 개의 캐비넷을 준비했지만 그것으로는 어림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렇게 많은 서류들을 어떻게 다 검토를 할까? 일부물품만 선별확인하고 그냥 원산지기준 충족으로 회신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무사안일의 유혹도 마음속에 생겨났다.
하지만 김 행정관은 상대국에 대한 우리나라의 원산지 신임도나 향후 계속적으로 검증을 받게 될 수출업체의 입장을 고려해 볼 때, 어려움이 있더라도 협정에 정해진 절차대로 성실하게 검증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업체들도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복잡한 원산지기준 충족 여부를 입증하는 일에 제대로 대응하던 상황에서 관련 절차나 규정, 증빙서류 및 서류 구비방법 등을 안내하고 선도하면서 검증을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수많은 서류에 파묻혀 밤늦게까지 일을 하면서도 짜증 한번 내지 않고 항상 웃는 얼굴로 묵묵히 응하던 과거 동료들의 얼굴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는 김 행정관.
그는 서류입증이 미흡한 20여개의 업체는 현장에서 문제점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검증을 종료하고 정해진 기간 내에 정확한 검증 결과를 상대국에 회신해 수출업체를 보호할 수 있었다.
또 검증결과 일부 원산지기준 불충족 사례는 규정에 따라 조치했고 시스템 상 문제점은 향후 검증대비를 위해 개선토록 컨설팅을 제공하기도 했다.
결국 김 행정관과 팀원들의 활약으로 원산지 검증은 제대로 마무리 될 수 있었고, 이후 H업체는 EU뿐만 아니라 미국세관으로부터 여러 번 원산지 검증요청을 받았지만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 30년 공직생활, "앞으로도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 김 행정관은 공직생활 중 기억에 남는 일을 묻는 질문에 2004년 10월 인천세관 휴대품 검사관실에서 근무하던 당시를 떠올렸다.
지금은 업무환경이 많이 좋아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 당시는 상상이상으로 열악한 환경이었다는 김 행정관.
어느 날 풍채가 좋아 보이는 50대 중반의 남자가 중국산 보이차를 다량 가져왔다.
개인 반입 적정량만 남겨두고 유치를 하려고 하자 남자는 곤란하다는 듯 항의를 했고, 당시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준을 적용하자는 원칙을 마음에 품고 살던 김 행정관은 단호하게 대응하고 결국 유치를 했다.
근무종료 후 퇴근을 하려는데, 갑자기 누군가 다가왔으니 바로 그 50대 중반의 남자였다.
그는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안하게 만드시냐?"고 말했고 김 행정관은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대우했는데 왜 불만스러워 하시느냐?"고 답변을 했다.
그러자 남자는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본래 종업원 100여명 정도를 거느린 전자부품 제조업체의 사장이었는데 좋은 실적을 내던 회사가 IMF를 겪으면서 결국 몇 달 전에 부도가 나고 말았다는 이야기였다.
지금은 빈털터리가 되어 중국에서 재기를 해 보려고 가끔씩 오가는데, 여비가 필요해서 보이차를 조금씩 가지고 다닐 뿐이라던 남자.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부정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자존심이 매우 상했고, 부정한 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꼭 해주고 가려고 몇 시간을 기다렸다면서 정중히 인사를 한 후 돌아갔다.
김 행정관은 "마음을 울리던 진실한 눈빛을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며 "그날 이후 사람들은 각자의 독특한 사연을 안고 살아가며, 어떤 경우라도 타인의 소중한 자존심은 해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1986년 공직에 몸을 담은 김 행정관은 얼마 뒤면 관세청에 임용된 지 30년이 된다.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일하자'라는 나름대로의 생각으로 공직생활을 해왔고 앞으로도 같은 마음가짐으로 일하겠다는 김 행정관.
그는 "아무런 사심없이 맡은 바 직무에 열성을 다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존경스러움과 함께 조직에 헌신하는 공동체 의식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저 역시 미력이나마 우리의 조직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소중한 역할을 더 찾아보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마지막으로 부족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길을 충실히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감사한 마음과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