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연극배우인 Y씨는 노래 불러 추모
그 옛날 ‘강남스타일’의 싸이보다 더한 한류스타가 있었다. 1930년대 아시아를 넘어 유럽을 강타한 무용수 최승희였다. 그녀는 유럽의 많은 지성인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무용할 때 썼던 초립동 모자는 한동안 파리에 널리 유행되었다.
하지만 남편을 따라 월북한 그녀의 말년이 어떠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몹시 비참했다는 얘기만 전한다. 그런 최승희가 어느 날 새벽 나를 찾아왔다. 헝클어진 머리, 허름한 차림새, 검게 그을린 얼굴에 투박한 손. “법사님, 제 구명시식을 좀 해주세요.”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무용계의 전설 최승희! 원조 한류스타인 그녀가 영가로 나타난 것이다.
문화계 지인의 초대로 서울 시내 한정식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지인은 “옛날에 이 집에서 누가 살았는지 아세요?” “누군데요?” “바로 최승희에요.” 순간 등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마치 최승희 영가가 자신의 구명시식을 위한 장소를 안내한 기분이었다.
“문화계에는 징크스가 있어요. 최승희를 소재로 한 연극, 오페라, 뮤지컬이 모두 흥행에 실패했어요. 분명 최승희는 매력적인 여주인공인데 왜 그녀를 다룬 작품들은 잘 안 되는 걸까요?” 사실 작품 뿐 아니라 최승희와 인연 있는 예술인들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지난 11월 24일, 서울 북촌 재동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전설의 무용가 최승희의 생일을 맞아 그녀의 영혼이 다시 태어나길 바라는 구명환생을 <한뫼촌>에서 올렸다. 꿈에 찾아온 최승희 영가의 간절한 부탁으로 이루어진 의식이었다.
최승희 탄생 104주년을 기념해 재동에 있는 그녀가 살았던 집에서 열린 구명환생은 최승희의 인생처럼 드라마틱했다. 최승희를 위해 생전 그녀가 사랑했던 와인과 한복디자이너 K씨가 손수 디자인한 보라색 머플러가 올려 졌고, 한국 최고의 연극배우인 Y씨가 직접 ‘Amazing Grace’를 불렀다.
나는 최승희를 위해 제문을 낭독했다. “선생님! 1911년 11월 24일은 몸이 태어난 날이라면2015년 11월 24일은 영혼이 다시 태어난 날입니다. 선생님!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오늘 이 시간부터 과거의 육신으로 존재치 마시고 오늘의 영혼으로 영원히 사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그 순간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영안(靈眼)으로 목도했다. 한 달 전 꿈에 나타났던 중늙은이의 최승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짧은 단발머리의 모던걸이 되어 몸에 딱 붙는 무용슈트를 입고 ‘아리랑’ 노래에 맞춰 방에서 마당까지 비상하며 춤추는 그녀의 모습은 환상적이었다.
나는 이번 구명환생을 통해 최승희가 남북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통일 학(鶴), 온 세상을 자유롭게 춤추는 예술학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