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일, 중국산 녹두, 말린 고추, 검정콩 등을 비료로 위장해 밀수한 전문 조직이 관세청에 적발됐다는 내용의 기사가 수많은 언론사를 통해 일제히 보도됐다.
당시 밀수된 중국산 농산물은 무려 73톤(시가 10억원). 관세율이 높은 녹두(607%)와 말린 고추(270%) 등을 일명 '커튼치기' 수법으로 6%대 싼 관세율이 적용되는 비료로 둔갑시킨 사건이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서울세관 조사국 조사관실 강청호 관세행정관(사진)은 9개월 간 사건을 수사하면서 여타의 사건에 비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며 두고두고 새겨볼만한 점이 있다고 전했다.
이어 강 행정관은 "풍문수준의 정보를 고급정보로 만들고, 모르쇠로 일관하던 피의자의 증거를 차곡차곡 수집해 밀수입 일당을 검거했던 이번 사건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Q&A로 풀어본 사건의 전말
Q. 어떻게 수사에 착수하게 됐나요?
A. 지난해 늦 가을 같은 부서 팀장이 흡사 염소 똥처럼 생긴 물건을 한 봉지 가지고 오더니 직원들에게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진짜였어. 염소 똥처럼 생긴 이놈으로 커튼치기해서 검정콩을 밀수하고 있네"
팀장은 약간 들떠 있었습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반신반의하였던 농산물 밀수입 정보가 구체적으로 들어나고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저는 '무슨 항만도 아닌 서울세관에서 농산물 밀수입 사건을 하겠다고 저러러나' 하고 의아해했습니다.
Q. 이번 사건은 시스템 분석이 아닌, '감'에서부터 출발했다고 들었습니다.
첫 출발부터 여타 사건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평소 관세청통합정보시스템인 CDW을 조회하고 분석해 조사에 들어갔던 사건과는 달리, 이 사건의 첫 출발은 거의 풍문 수준의 단서였습니다.
3년 전 농산물 저가신고로 우리 팀의 수사를 받았던 피의자 중의 한명이 자기에게 녹두 모양의 비료로 위장해 몰래 밀수입한 진짜 중국산 녹두를 한국에서 팔아 달라고 대전의 A씨가 자꾸 전화를 해서 귀찮다고 한 이야기가 이 사건의 시작이었습니다.
피의자의 말을 귓등으로 듣지 않고 관심을 기울인 것은 우리 팀이였습니다. 만약 세관공무원으로서 '감'과 '집중력'이 없었다면 이 사건의 수사는 출발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Q. 수사는 어떻게 진행됐나요?
A. 이 사건은 누가, 누구 이름로, 언제, 어떻게 수입을 하고 있는지 아무런 정보가 없었습니다. 제보자에게 밀수입한 녹두를 팔아 달라고 전화를 자주 했던 대전의 A씨는 수출입 실적이 전혀 없었고 아무런 사업도 하고 있지 않는 무직자였습니다.
그는 누군가가 밀수입한 농산물을 국내에서 판매하는 판매책으로만 보였고 누가 세관에 비료로 속여 수입신고를 하고 농산물을 밀수입하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A씨가 중국 단동으로 출국해 3~4일 머물다가 입국한 사실을 찾아냈습니다. 우리는 혹시 밀수입 일당과 함께 움직이지는 않았을까해서 바로 동행자 파악에 나섰고, 동행자 분석은 꽤 효과적이었습니다.
국내 판매책으로 보이는 A씨는 최소 2명과 작년 7월부터 함께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한명이 '00식품'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식품이 아닌 천연비료를 수입하고 있었고, A씨와 동행자들은 모두 00식품이 수입신고를 하기 1~2주 전에 모두 중국 단동에 출국했다가 수입신고일자 즈음에 모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얼마 뒤 그들은 중국 단동으로 출국했고 며칠 뒤 단동에서 출발하는 화물선에 00식품의 컨테이너 2대가 실려 왔습니다. 이제 이들이 천연비료로 세관에 수입신고를 하기만을 기다렸다가 컨테이너가 국내 운송이 되면 현장을 덮쳐 검거하면 끝이었습니다.
Q. 하지만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셨다고요.
A. 화물이 인천세관 X-레이 검색 대상이 되면서 밀수입 조직 일당의 움직임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밀수입 전과가 있는 등 관록과 경험이 풍부한 60~70대 노인들이었습니다.
X-레이 검색을 이상 없이 통과했음에도 피의자들이 한 달 동안 수입신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더는 기다릴 수만은 없어 압수영장을 발부받아 보세구역에 있는 컨테이너를 열었더니 컨테이너 입구 쪽 2~3줄은 천연비료를 쌓았고, 안쪽은 모두 중국산 압착 건고추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겨울 김장철 특수를 누리기 위해 콩이나 녹두 대신 건고추를 밀수입한 것이었습니다. 상업송장의 수하인을 불러 조사했더니, 자신은 이름만 빌려주었을 뿐 거기에 밀수품이 있는지 전혀 몰랐다며 '모르쇠' 전략으로 나왔습니다. 예상했던 그대로였습니다.
Q. 어떻게 사건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나요?
A. 우리 팀은 피의자들의 자백을 듣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피의자들의 휴대전화 발신지 등을 추적하는 방법 등으로 이들의 동선을 파악해 밀수품 국내 보관창고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동시에 국내 금융거래내역을 추적해 이들로부터 밀수품을 구매한 취득자를 밝히는데 주력했고 이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최근에 피의자로부터 밀수농산물을 구입한 사람들은 모두 피의자들과 입을 맞춰 놓은 인상이었으나, 5~6개월 전 밀수입한 농산물인 녹두나 검정콩에 대해서는 꽤 많은 흔적이 전국 각지에 남아 있었습니다.
특히 피의자들로부터 녹두를 산 경북 어느 시골에 있는 숙주나물공장을 찾아 밀수입한 녹두를 모두 압수했습니다. 최근 범행보다 오래 전 범행에 대해 피의자들은 증거인멸을 다하지 못하고 많은 흔적을 남긴 것입니다. 이렇게 발견한 피의자들의 흔적은 고스란히 피의자들의 밀수입 범죄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 "아빠 덕분에 내가 똑똑한 이미지가 됐어"
강청호 행정관은 가족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딸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세관공무원을 아빠로 둔 딸이 요즘 젊은 층 사이에 가장 핫한 이슈 가운데 하나인 '해외직구'에 대한 상담을 학교에서 도맡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접한 강 행정관.
그는 "딸에게 '친구들에게 뭐라고 이야기 하냐'고 물었더니 딸이 '해외운임을 포함해서 물품가격이 15만원을 넘어가면 관세를 내야하고, 자가 사용해야만 관세가 없어'라고 말해준다고 했다"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는 이어 "딸이 '아빠가 세관에 근무해서 친구들한테 내가 엄청 똑똑한 이미지가 생겼어'라고 말했다"며 "딸아이가 저를 자랑스러워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 딸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 행정관은 "가족이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물샐 틈 없는 조사를 실시, 국민들의 안전을 보호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약력]
▲성명 : 강청호(남, 41세)
▲직급 : 관세직 8급
▲현재부서 : 서울세관 조사관실
▲주요경력 : 서울세관 통관국 자유무역협정2과(2010년), 서울세관 심사국 체납관리과(2011년), 서울세관 조사국 조사관실(2012년~현재)
▲주요포상 : 2010년 관세청장 표창, 2015년 서울세관장 표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