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잃어버린 아들을 기다리는 파출소 영가
20여 년 전 경기도 외곽의 한 파출소. 그곳에는 오래 전부터 귀신이 나타난다는 괴담이 돌고 있었다. 어느 날 새로 부임한 파출소 소장도 귀신을 보았다. 파출소에 오래 근무한 경찰을 불러 귀신 괴담의 정체를 물었다.
그러자 경찰들은 가장 최근에 귀신을 목격했다는 의경을 불렀다. 20대 초반의 의경은 그날 야간 근무를 서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차가운 공기가 얼굴에 와 닿더니 창밖에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가 자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게 아닌가. “누구야”라고 묻자 여인은 마치 따라오라는 듯 몸을 돌려 스르륵 이동하기 시작했다.
순간 의경은 의자를 박차고 뛰어나가 여인을 쫓아갔다. 여인은 마치 미끄러지듯 파출소 건물 밑 땅속으로 사라졌다. 놀란 의경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주변을 샅샅이 살폈지만 도저히 사람이 들어갈 만한 공간이나 구멍은 없었다.
그 파출소에 근무한 경찰들이 봤다는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 영가는 과연 누구일까. 모두들 궁금해 하던 어느 날이었다. 파출소에 느닷없이 40대 남성이 찾아왔다. 무슨 일로 왔냐고 묻자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꿈속에서 하얀 소복을 입은 아주머니가 저보고 이 파출소로 오라고 했습니다”라고 했다.
얼마 후, 파출소 사람들은 모두 건물 앞에 모였다. 새 건물을 짓기 위해 50년이 된 파출소를 철거하는 날이었다. 건물을 모두 헐고 땅 밑을 파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인부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달려가 보니 그 자리에 여자의 유골이 있는 게 아닌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그 동네에서 오래 살던 주민에게 물어보니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현재 파출소가 있던 자리에 오래 전 가난한 여인이 살던 토굴이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에게 동냥을 해가며 어린 아들을 먹여 살렸는데 언제부터인가 깊은 병에 걸려 거동을 못하게 됐다. 어린 아들이 동냥하러 마을로 내려갔다가 그만 길을 잃고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들을 기다리며 토굴에서 외로이 눈을 감았다. 여인의 시신을 발견한 마을 주민들은 토굴에 흙을 덮어 여인을 묻었고, 세월이 흘러 그 자리에 파출소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럼 그날 꿈속의 여자가 이곳으로 오라고 해서 찾아왔던 40대 남자가 혹시 하얀 소복 입은 영가의 아들이 아닐까?” 그 남자는 자기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또 어머니가 누구인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파출소 직원들은 건물 밑에서 발견된 여자의 유골을 정중히 이장해 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줬다. 이후 새로 들어선 파출소에서는 어느 누구도 하얀 소복 입은 여자 영가를 봤다는 사람이 없었다.
형편이 어려웠어도 예전의 어머니들은 지금보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훨씬 간절했다. 잃어버린 자식을 기다리다 세상을 떠났어도 어머니는 영혼으로 40여 년 동안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언젠가는 아들이 찾아올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