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박정희 유신정권-'증세수단'으로 도입
국가 기간 세목으로 자리잡은 부가가치세제가 도입된지 30년을 맞았다. 1976년 도입돼 1977년 7월1일부터 시행되었다.
부가가치세제는 왜, 어떻게 도입되었을까. 그리고 어떤 역할을 해 왔을까. 조세일보는 부가가치세가 도입돼 우리 경제와 세제에 미친 공과의 역사를 시리즈로 하나 하나 되짚어 본다. -편집자 주-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 지역 대학생들이 시민들을 규합, 박정희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전개하고 나섰다. 역사는 이 사건을 '부마민주항쟁'로 규정하고 있다.
시위대는 10월 16일과 17일 이틀간 정치탄압 중단과 유신정권 타도 등을 외치며 지역의 공공관서에 불을 지르는 등 거센 시위를 계속했다. 박정희 정권은 군대를 동원해 시위를 진압했다. 그러나 민주항쟁의 불씨를 완전히 잡지는 못했다.
부마민주항쟁이 진정된 지 몇 일 지나지 않은 10월 26일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쓰러졌고 서슬 퍼렇던 '유신정권'은 완전히 막을 내렸다.
시위대가 '세무서'를 습격한 이유는
부마민주항쟁 당시 시위대가 내세운 명분은 민주화였다. 유신체제를 공고히 한 박정희 정권의 퇴진을 요구한 것. 시위대는 경찰서, 도청, 방송국 등 주요 공공건물에 불을 지르는 등 강력한 시위를 전개했다.
시위대가 방화(放火)한 공공건물 중 '세무서'도 끼어 있었다.
시위대가 세무서에 불을 놓은 것은 단순히 정부시설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1977년 시행된 신(新)세제(지금은 국가 기간세제로 자리잡은), 부가가치세에 대한 저항, 즉 '조세저항'의 표출이었다.
부가가치세제의 탄생, 1977년
1976년 박정희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 박 대통령은 이 날 기자회견에서 부가가치세 도입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시행시기는 1977년 7월 1일. 물론 이 세제의 태생적 한계점이 영원할 것만 같았던 정권의 몰락을 부채질할 줄 당시에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당시 대한민국에는 10여개가 넘는 간접세가 있었다. 그 이름도 찬란(?)하다. 영업세, 물품세, 직물류세, 석유류세, 전기가스세, 통행세, 입장세, 유흥음식세 등. 이 세제를 폐지 또는 통합한 것이 '부가가치세제'였다.
경제관료들의 두뇌를 총동원, 유럽형 부가세제를 차용한 제도 도입안이 마련됐다. 그러나 제도 도입 과정에서 국민여론은 철저히 배제됐다. 근거과세 등 그럴싸한 명분을 내걸었지만 당시 유신정권의 속내는 '세수증대'에 맞춰져 있었다.
도입을 준비하면서 정부 내에서는 찬·반 양론이 갈리며 논란이 극심했다. 납세대상자인 사업자들의 부담, 물가앙등 우려, 10대 총선과 같은 정치적 상황 등을 고려해 제도 시행을 늦춰야 한다는 의견이 여기저기서 제기됐다.
그러나 이미 박 대통령은 제도 도입의 뜻을 굳힌 상태였다. 결국 세율 10%, 예산액 2100억원을 목표(시행 첫 해 2400억원 이상의 세수창출)로 부가가치세제가 1977년 7월 1일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1978년 10대 총선 여당 참패‥패배의 원인은 '부가가치세'
1978년 12월 제10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됐다.
총선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었다. 대통령이 통일주체국민회의('유신헌법'에 의해 조직된 헌법기관)에서 간선으로 선출되고 지방자치제도도 없었던 당시, 총선은 민심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또한 제10대 총선은 유신헌법 공포 직후인 1973년 제9대 총선 이후 6년만에 치러지는 첫 선거였다. 사실상 유신체제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이 강했던 것이다.
따라서 선거의 결과는 엄청난 의미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부가세제도 도입 논의 과정에서 선거를 앞두고 조세저항 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 신세제를 도입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던 것(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결과적으로 당시 여당이었던 공화당은 총선이 끝난 이후인 1979년 이후로 부가세제 도입을 연기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뜻을 굽히지는 못했다. 선거 패배가 가진 정치적 의미를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
선거 결과는 혹독했다. 제10대 총선에서 여당인 공화당은 의석 수에서는 야당인 신민당에 앞섰지만 득표율에서 신민당에게(1.11%)뒤지고 말았다. 사실상 여당의 패배였다. 당시 여당은 패배의 원인을 '부가가치세제 도입'으로 분석했다.
부가세제에 대한 조세저항은 선거 결과에만 반영된 것은 아니다. 시행 초기인 1977년 10월 서울 남대문, 동대문, 평화시장 등 상인들이 문을 닫는 철시(撤市)사태가 벌어지는 등 납세자들의 저항이 거세게 일었다.
민주항쟁, 한 배를 탄 '조세저항'‥그리고 정권의 몰락
부가가치세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선거 패인으로 꼽히면서 부가세제 도입의 주축이었던 김정렴 대통령 비서실장, 남덕우 경제부총리, 김용환 재무부 장관은 요직에서 물러났다.
각계에서는 선거 패배를 야기한 부가세제의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1979년. 신민당 당권이 김영삼 前대통령에게 넘어가면서부터 박정희 정권은 몰락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는 박 대통령에게는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다. 결국 두 거물의 대립각은 김영삼 총재의 국회제명으로 이어졌고(1979년 10월) 연이어 이 같은 조치를 반대하는 부마항쟁이 터졌다.
표면적으로 부마항쟁은 김영삼 제명에 따른 유신철폐였지만 유신정부는 부마민주항쟁의 도화선은 부가세에 대한 조세저항에 있었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박정희 정권은 군대를 동원, 과격한 진압으로 부마항쟁을 누그러뜨렸지만 그 불씨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운명의 1979년 10월26일. 궁정동 안가에서 박 대통령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박정희 정권 몰락의 직접적인 원인이 부가세제였다는 것은 당시의 복잡했던 정치적 상황에 비춰볼 때 정설(定說)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다만 부가가치세제 도입이 여러 측면에서 정권 몰락의 연장선상에 있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