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관리 의존 단속 체계"‥"실효성 없다"
"상시단속 강화·납세의식 제고 필요"
자료상이 세금을 빼먹고 있다. 최근 국세청에 따르면 다른 법인명의를 도용해 수수료를 받고 수십억원 상당의 가짜 세금계산서를 끊어준 일당이 붙잡혔다. 지난 2004년 국세청 조사 당시에는 5607억원의 세금계산서를 발행한 42명이 적발되기도 했다.
지난해 국세청이 자료상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건수는 3천여건을 훌쩍 넘는다. 따라서 그들이 끊어준 가짜 세금계산서 발행금액과 국세청에 의해 적발되지 않은 수치 등을 감안하면 가히 천문학적인 액수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같은 자료상 문제는 국세청의 오랜 골칫거리. 국세청에서는 자료상이 조세정의를 무너뜨리는 엄연한 범법행위이기 때문에 반드시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은밀히 이뤄지는 거래의 특성상 적발하기도 힘든 문제다.
자료상들은 이러한 단속의 허점을 이용해 별다른 노력없이 금액을 부풀려서 세금계산서를 만들어내기만 하면 손쉬운 이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계속된 탈세를 자행하고 있는 것.
이에 대해 국세청에서는 각 지방청 및 세무서 등에 특별 전담반을 구성하고 분석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꾀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부족해 오히려 시간과 인력만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자료상 실태는?
자료상이란 실물거래 없이 가공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부가가치세를 부당 공제받을 수 있도록 해주거나, 무자료 판매를 일삼는 자로부터 허위 세금계산서를 받아주고 그 대가로 자료 금액의 3~5% 가량의 수수료를 얻는 자를 말한다.
경제여건은 점점 어려워지고 과세당국에서는 신용카드 및 현금영수증 제도 도입 등 과표양성화 노력을 지속함에 따라 현금수입업종이나 세금계산서 발행을 기피하는 업종에서는 부가가치세를 줄여보기 위해 자료상으로부터 가공 세금계산서에 대한 유혹을 떨치기가 힘든게 현실이다.
현 제도상 재화나 용역의 공급자가 세금계산서 교부에 대한 통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발행교부가 가능하기 때문에 자료상이 양산되고 있으며, 가공 세금계산서가 범죄라는 사실에 대해 일반 납세자의 인식이 부족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이들은 평균 2~3개월 정도 단위로 폐업과 개업을 반복하기 때문에 과세당국이 추적하더라도 적발되기가 힘들며 노숙자 등 무능력자의 명의를 도용해 신분을 비노출하는 방법을 사용해 허위사업자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세무공무원의 자료상 조사요령 및 지침을 공유하면서 조사에 대응하는 등 점차 행위가 지능화되고 대상 업종들도 다양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인터넷 포털사이트 및 신문광고 등을 통해 자료상 행위를 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세청에서는 자료상 근절을 위해 매년 강도높은 세무조사를 실시하는 등 나름대로 조치를 취해왔지만 오히려 자료상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자료상 혐의로 고발된 건수는 지난해 3725건으로 ▲2000년 637건 ▲2001년 1065건 ▲2002년 1129건 ▲2003년 2108건 ▲2004년 3698건 등이었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자료상 고발건수는 적발된 사례 중에서 검찰에 고발한 건수만을 추려낸 것"이라며 "자료상에 의한 탈세는 부가가치세 외에도 소득세 등 다른 세목에도 얽혀있기 때문에 그 추징액수는 추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 탈세의 원흉 '자료상'‥세금 이중탈루 폐해 심각
이 같은 자료상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실제로 허위자료를 발급한 경우뿐만 아니라 구입한 경우에도 세금의 '이중탈루'가 빚어지기 때문.
즉 자료상은 수수료를 받고 다른 사업자의 매출을 자신들의 매출로 만든 후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결국 다른 사업자의 세금까지 탈루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별다른 노력없이 허위 세금계산서 발행에 대한 수수료로 폭리를 취하고, 다시 도주 후 위장 사업자등록 등을 통해 계속된 활동을 벌이는 등 세법질서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이는 세금계산서를 정확하게 주고받는 성실 납세자들을 우롱하는 처사로서 자료상으로 인해 공중(?)으로 날아간 세금은 모두 성실한 납세자들에게 그 의무가 전가되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가짜 세금계산서를 구매한 사업자는 과세당국에 적발될 경우 부가세, 법인세, 소득세 등 탈루세액을 한꺼번에 추징당하게 돼 회사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국세청에서는 실물거래없이 가짜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사업자의 가공원가 계상, 매입세액 부당공제 등 탈세행위를 조장하거나 원인을 제공하는 자료상 행위에 대해 지속적으로 규제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 현행 자료상 단속시스템‥"너무 많은 행정이 투입된다"
국세청은 지난 2003년부터 각 지방국세청에 '광역추적 조사전담반'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 2004년과 2005년에는 각각 2차례에 걸쳐 전국 일제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또한 자료상 사전예방을 위해 지난 4월부터는 각 세무서에 '자료상 색출전담팀'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특히 '자료상 연계분석 시스템'을 통해 세원관리과에서는 자료상 혐의자 선정기준에 해당하는 사업자 중 분석대상 명단을 추출해 이들의 거래내역을 분석한 후 혐의가 있는 경우 조사과로 넘겨주고 있다.
또한 자료상 혐의자를 조기 색출하기 위해 징세과에서는 동일 사업자가 상이한 신고서를 2개 이상 제출한 경우 세원관리과에 통보하는 등 각 과별로 연계된 업무를 진행하고 있으며 긴급게시판을 운영해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즉 '징세과-세원관리과-조사과-각 지방청 및 세무서'로 이어지는 시스템을 통해 자료상 혐의를 적발해내고 있는 것.
그러나 자료상의 특성상 단기간에 폐업하고 도주하는 경우가 많아 추적조사에 의한 색출에 많은 시간과 인력을 낭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료상 혐의자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는 시기가 실제로 자료상 행위가 끝난 시점부터 수개월에서 수년이 지난 후 이뤄지기 때문에 실질적인 단속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결국 국세청에서는 자료상 근절을 위해 많은 인력을 투입하고도 '뒷북'만 치고 있는 형국으로 그 실효성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 단속의 한계‥"제도·행정상의 문제점은?"
자료상은 거래 당사자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장부에 외형적으로는 정상거래와 동일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국세청에서는 그 행위를 적발하기가 쉽지 않으며 추후 세금계산서를 분석하는 시점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적발되더라도 자료상이 정상거래를 주장하면서 '오리발'을 내밀 경우 수사권이 없거나 금융조사 제한 등으로 인해 추가자료 확보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
특히 사업자 등록 후 짧은 시간 동안 다량의 허위 세금계산서를 교부하고 폐업하는 자료상을 즉시 적발해내는 것은 현행 사후관리에 의존하는 시스템에서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기업 측면에서는 거래상대방이 세금계산서 수취를 기피할 경우 부득이하게 자료상을 이용할 수 밖에 없으며, 영세사업자들의 경우에도 간이과세 대상에 계속 안주해 조세부담을 줄이기 위해 세금계산서를 기피하는 현실은 자료상 난립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정당한 세금계산서를 주고받는 문화가 아직 정착돼 있지 않고, 가공 세금계산서에 대해 '범죄'라는 인식이 부족한 납세자의 의식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과세당국의 한 관계자는 "자료상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개인 및 기업의 납세의식 제고가 가장 시급한 문제"라며 "아무리 적발하려해도 자료상을 필요로 하는 납세자가 있는 한 근절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 제도개선 과제‥"사전관리 체계마련 시급"
현재 과세당국에서는 자료상 연계분석시스템 및 긴급게시판 등을 이용해 자료상 조기적발 노력을 기하는 한편, 지방청에 전담반을 설치하는 등 상시조사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자료상을 목적으로 사업자등록을 하는 경우 제3자의 명의를 도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국세청의 검색시스템으로는 위장사업자를 가려내기 힘든 것이 사실.
따라서 사업자등록 신청자에 대한 현지확인을 강화해 실제 사업여부를 가려내는 한편, 사전 검색시스템의 항목을 세분화해 등록단계에서부터 자료상을 색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병목 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와 관련해 "표본점검을 부실세적자 조기발견 위주로 전환해야 한다"며 "사업자단체를 통한 자율적 내부규제 및 무자료 거래 배격을 위한 자정권한을 부여하는 등 상시 감시체제도 확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거래의 중간단계에 개입할 수 있는 부동산임대업, 건설업 등의 업종에 대한 간이과세 배제기준을 강화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는 거래내역이 자동 노출될 수 있는 전자계산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 전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이 같은 제도적 방안 외에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납세의식이다. 지난 4월부터 자료상이 활개를 치지 못하도록 형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신설됐다. 하지만 손쉽게 폭리를 얻을 수 있는 자료상들이 쉽사리 꼬리를 내리것이라고는 예단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루아침에 국민들의 납세의식이 달라질 수는 없다. 다만 납세자 입장에서 '탈세'에 대한 유혹을 조금이나마 떨칠 수 있도록 과세당국에서 그동안 어떤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