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2주일 만에 깨어보니 통장에서 5200만원이 사라졌다.
그의 가족들이 임의로 비밀번호를 변경해 인출한 뒤 병원비에 사용했다면 이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교통사고를 당한 A씨의 누나는 은행에 방문해 동생 통장의 비밀번호 변경을 요청했다. 어머니가 A씨의 통장을 건네며 "병원비에 사용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당시 은행 직원은 호적등본을 통해 A씨와 동생의 관계를 확인하고, A씨가 입원한 병원에 전화를 걸어 뇌사 상태인 사실을 알아본 뒤 비밀번호를 변경했다.
A씨의 누나는 21차례 동안 1146만을 인출해 보험료와 생활비, 간병인 고용비 등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A씨가 극적으로 깨어나 확인하자 통장에서 인출된 돈은 총 5200만원에 달했다.
A씨가 경찰에 수사 요청을 한 결과, 또 다른 누나가 현금카드를 이용해 돈을 인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은행에서 손해를 배상해달라"고 요구했으나 은행 측은 "누나가 보호자 자격으로 비밀번호 변경을 신청했고, 은행의 업무 처리에는 과실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은행이 제3자에게 비밀번호를 임의로 변경해 준 경우는 민법에 따라 예금주의 상황이나 경위,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손해배상을 결정한다.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은행에서 비밀번호를 변경해 준 것이 사회 일반의 정의 관념에 반하지 않고 고객에 대한 보호 의무를 저버린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당시 A씨가 의식불명으로 사회 통념상 대리관계를 인정할 필요성이 있다. 병원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예금 인출이 불가피했다고 인정된다"고 밝혔다.
경찰도 A씨의 가족들이 예금을 인출한 사실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